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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조주빈 "정치인이랑 커넥션, 연예인은 노예일뿐"

기성세대 '고급 전문가'인양 포장...'자기 우상화'로 텔레그램상 신격화

2020-04-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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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국내 최대규모 '디지털성범죄' 주범 조주빈이 피해자는 물론이고 '직원'과 유료회원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온라인상에서만 가능한 '자기 우상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주빈이 검거되기 전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을 통해 무료 대화방 참여자들과 나눈 대화내용 등을 5일 종합해 보면, 자신에 대한 신격화 내지는 우상화를 위해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치밀하고 지속적으로 펴왔다.
 
성착취범 조주빈으로부터 사기 및 협박 피해를 입은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 김웅 프리랜스 기자, 윤장현 전 광주시장(왼쪽부터). 그래픽/뉴스토마토
 
"청도 거주 47세 도주자"
 
'박사방' 상에서 조주빈은 자신을 '가상의 인물'인 중국 청도에서 사는 1974년생 47세 '최선일'로 설정했다. 실제 나이 만 25세 보다 21살이나 많은 인물이다. 직업은 전 사설정보소(흥신소) 운영업자로, 국내에서 범행 후 필리핀을 거쳐 중국으로 도주한 뒤 현지 여성과 위장 결혼해 청도에 머물고 있다고 자신을 꾸몄다. 
 
또 고아원 출신으로 부모와 수녀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이 있고,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다쳐 의족 생활중이며 필로폰에 중독돼 있다고 텔레그램상 측근이나 지인들을 속였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3년여간의 필리핀 거주 경험으로 영어에 능통함', '15년여간의 흥신소 경험으로 신상추적 및 공갈·협박에 능함', '사법시험 1차 합격' 등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치장했다. 
 
"영어 능통...사시 1차 합격"
 
조주빈이 자신을 이같이 설정한 배경은, 공범들과 피해자들에 '기성세대 전문가'라는 인상을 강하게 줘 항거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수사선상에 올랐을 경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언론을 통해 '박사방' 범죄가 보도되자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는 김윤기'라는 인물로 자신을 세탁하기도 했다.
 
'박사방' 운영면에서도 도움이 됐다. 조주빈이 직접 처리했거나 개입했던 사건 뒷얘기라고 단체 대화방에서 주장한 연예, 정치 등 풍문은 상당부분 10년 전 또는 그 이전 일로 조주빈이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때 발생한 사건들이지만 '47세 최선일'로 그를 알고 있는 텔레그램 이용자들은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조주빈이 측근이나 '고객'들을 텔레그램 등 온라인상에서만 만났기 때문이다. 후계자라고 알려진 텔레그램 '태평양', '이기야', '부따', '사마귀' 등 공범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수족처럼 부린 '검은개', '지킬박사', '구마적' 등도 그를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오프라인 수족들을 비롯해 '직원' 상당수는 조주빈 보다 훨씬 나이가 많거나 다수의 전과를 가진 인물들도 있다.
 
'수족' 중 47세 전과자도 있어
 
조주빈 발언과 언론에 제공된 자료에 의하면 조주빈의 수족 중 '지킬박사'는 올해 47세로 전과 14범이다. 주로조주빈이 성착취 대상으로 지목한 피해여성들을 찾아가 협박했다. '검은개', '구마적'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조주빈은 그 대가로 소액의 상품권 등을 지급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조주빈은 이들 중 일부에게 '필로폰'을 줬다고 대화방에서 주장했지만 이는 대화방 참여자들이나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허세를 부리기 위해 거짓말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조주빈은 특히 대화방에서 연예인이나 일명 '셀럽(celebrity/연예나 스포츠 분야 따위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명 인사나 일반인)'보다는 유력 정치인이나 언론인, 정부기관 인사들과 가깝다고 주장했다. 'n번방 계열' 등 '박사방'과 유사한 다른 성착취 채널 운영자들과 같이 국내 미성년자나 일반인 여성, 외국 불법음란물을 유포하는 단순한 '성착취범' 차원이 아닌 국가와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자로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노예는 취미"
 
지난해 9월 무료대화방에서 조주빈은 자신의 성착취 범행에 대해 "그냥 여기서 어린애들이랑 장난치는 거지. 노예는 취미"라고 하는가 하면 같은 해 11월 대화에서는 손 사장을 '석희형'이라고 한 뒤 "나는 연예인이랑은 큰 커넥션이 없고, 정치인이지. 연예인들은 대가리(사람의 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비어서 대화 안 통해"라고도 했다. 그해 12월 대화방에서도 "제가 싹 다 오픈하면 답이 없어요. 시끄럽습니다. OOO니 OOO니 다 까면 대한민국 대청소 됩니다"라고 말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 시기 자신을 다룬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OOO>가 손 뗀 이유. 제가 OOO랑 통화했다고 한 이후 바로 마무리 지은 거 아시죠?"라거나, 올해 2월에도 "<OOOOO>가 OOOO긴 했는데, 너무 숨기네. O 녹음 깠는데도 그건 한 마디도 안 나오잖아"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연예인, 머리 비어 대화 안돼"
 
반면, 조주빈은 상대적으로 연여예인들을 노예 수준으로 비하했다. 2019년 11월 한 대화에서 "(요즘)연예인들이 욕심도 없고 딱 돈 어느 정도 벌고 나선 편하게 살자 마인드라 스폰도 안 받음. 그러니 강제로 따야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연예인 따는 게 제일 쉬운 게, 접근만 되게 시나리오 짜면 찾아가서 알몸 찍고 돈 뺐으면 끝"이라고 했다. '연예인은 대가리가 비어 말이 안 통한다'는 취지의 말은 즐겨하는 수준이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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