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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윤석열 '신임검사 신고식 발언' 행간…'면종복배'의 격문

'민주주의 허울' 쓴 독재는 문재인 정부, '진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은 검찰

2020-08-0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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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신임검사 신고식장에서의 발언을 두고 '면종복배(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의 격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윤 총장이 신임 검사들에게 전한 '당부의 말씀'은 총 5개 단락이다. △신임 검사들에 대한 축하와 격려 △헌법에 입각한 수사 △검찰 조직 구성원으로의 자세 △인권 중심의 수사 △초심을 잃지 않는 자세 등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총장이 오랜 고민 끝에 직접 썼다고 한다.
 
윤 총장은 이날 신임 검사들에게 "여러분의 기본적 직무는 형사법 집행"이라면서 "형사법률은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법체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다른 법률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핵심적인 법률이자 헌법 가치를 지키는 헌법 보장 법률"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형사법률을 집행하는 검찰이야 말로 헌법을 지키는 가장 핵심적인 조직이라는 의미로 읽힌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대검찰청 1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사진/대검찰청
 
앞선 신고식서 강조한 헌법과는 '딴판'
 
윤 총장은 지난 2월3일 신임검사 신고식에서도 '검사와 헌법'을 언급했다. 그가 그날 "검사의 직은 개인의 권한이나 권력이 아니다. 헌법에 따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를 오로지 국민을 위해 올바르게 완수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검사는 끊임없이 헌법적 이슈에 직면하게 된다"며 "언제나 헌법에 따른 비례와 균형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달라"고도 했다. 
 
지난 4월1일 신임검사 신고식에서도 윤 총장은 "형사법집행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수위로 말했다. 형사 법집행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므로 오로지 국민을 위하여, 국민을 보호하는 데 쓰여야 한다"며 "항상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헌법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검사가 되어 줄 것을 당부 드린다"고 했다. 5월11일자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강조한 말도 같다. 그러나 이날 그가 말한 '검사와 헌법'은 결이 상당히 다르다.
 
'헌법 핵심' 말하면서 내심 드러내
 
윤 총장의 내심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대목은 헌법의 핵심가치를 말한 부분이다. 그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국 전 장관 일가' 사건의 과잉수사 논란을 시작으로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패스트트랙 사건', '한명숙 전 총리 공판 위증 의혹', '검언 유착 의혹' 사건까지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와 정면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윤 총장이 갓 공직에 들어선 신임 검사들에게 이날 역설한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는 문재인 정부를, '진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은 헌법 보장 법률인 형사법률 집행을 기본 직무로 하는 검찰을 가리킨 것 아니냐라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검찰총장이 할 말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의제·다수결 따른 법, 공평히 적용해야"
 
윤 총장은 또 "대의제와 다수결 원리에 따라 법이 제정되지만 일단 제정된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면서 "특히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국민 모두가 잠재적 이해당사자와 피해자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와 검찰 조직이 여러분의 지위와 장래를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기 바란다"면서 "저와 선배들은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과 열정을 강력히 지지한다"고도 격려했다. 검찰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격려사 전문을 관통하는 행간을 들여다 보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평가다.  
 
'추미애 데드라인' 때도 똑같은 기조
 
윤 총장이 이번 격려사와 비슷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예는 또 있다. 그는 지난 7월9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을 따를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물었을 때 대검 대변인실을 통해 "총장은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직무배제를 당하고 수사지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앞뒤 전체적 맥락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속 뜻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검찰청법을 위반해 위법하다는 반발이었다. 추 장관은 당시 '수사 개입·위법 지시'논란으로 옷을 벗은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고, 자신은 부당하게 수사지휘 배제를 당한 수사팀장이라는 의미다.
 
검찰 내부 분위기 '고무'·통합당 "환영"
 
윤 총장의 이날 발언으로 검찰 내부는 고무된 분위기다. 법조계의 한 유력 인사는 "윤 총장이 할 말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은 이날 윤 총장의 발언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을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에서 윤 총장이 지적한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 부분에 대해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 그러나 윤 총장의 의지가 진심이 되려면 조국, 송철호, 윤미향, 라임, 옵티머스 등 살아있는 권력에 숨죽였던 수사를 다시 깨우고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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