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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정의선 능력 스스로 입증하면 된다
2020-10-21 06:00:00 2020-10-21 06:00:00
현대자동차그룹에 '정의선 시대'가 열렸다. 2018년 9월 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2년1개월 만에 명실상부한 그룹총수에 오른 것이다. 정 회장은 이미 사실상 총수로서 활동해 왔다. 지난해 3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를 맡고 올해 3월에는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국내 주요 재벌총수들과 여러 차례 회동하며 '공인'받기도 했다.
 
정 회장이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하는 동안 현대차그룹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했다. 현대차그룹의 주식 시가총액은 2018년 5월까지도 100조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그 이후 중국시장 부진과 경쟁력에 대한 우려 등 악재가 잇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올 들어서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3월 한때 45조원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까다로운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다. 요즘은 다시 100조원 안팎으로 상승했으니 정회장으로서는 괜찮은 카펫을 깔아준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목표주가 상승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우호적인 평가에는 크게 2가지 시각이 반영됐다. 우선 현대차의 체질개선과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차가 단순히 내연기관 완성차뿐만 아니라 첨단 모빌리티 비중을 강화하는 등 사업구조 개편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이 공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수소차와 전기차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해 7월까지 세계에서 전기차 6만여대를 팔았다. 세계 4위의 판매량이다. 현대차는 내년을 전기차 도약의 원년으로 삼는 등 힘을 쏟을 계획이다. 다만 최근 전기차 '코나'의 잇단 화재로 경종이 울렸다. 그렇지만 이런 악재들은 아직 크게 발목을 잡지는 않는다. 또 세계 최초로 양산한 대형 수소전기트럭을 최근 스위스에 수출하는 등 세계적인 수소차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시각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다. KB증권 강성진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이 향후 '시장친화적 과정'을 통해 '선진화된 지배구조 변화'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선진화된 지배구조 변화의 첫 단추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형재벌은 순환출자 구조를 거의 정리했다. 그렇지만 현대차그룹에서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현대차그룹은 2년 전 지배구조 변화를 추진했다. 골자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등 계열사로 단순화되면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현대모비스의 3개 모듈·AS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한편,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글로비스 지분을 팔아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사들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합병과 분할 비율이 불합리하고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무리하게 키우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엘리엇 등 행동주의 주주들과 기관투자가들이 비판을 쏟아내자 현대차는 개편안을 자진 철회했다. 그 이후 2년 넘게 흘렀지만, 무슨 연유인지 수정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재벌개혁을 위한 공정경제 3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따라서 지배구조 개편을 더는 늦출 수 없을 듯하다.
 
정 회장에게는 재벌3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문란한 사생활이나 배임 횡령 등 추문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과거 현대그룹 왕자의 난 이후에는 친족 사이의 경영권 다툼도 벌어지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추문으로 고객과 주주 그리고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일단 큰 장점이다.
 
이제 남은 것은 확실한 경영성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일이다. 본업과 상관없는 사업에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종업원은 물론이고 중소 협력업체와의 진실한 상생협력도 현대차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최근 중고차 시장까지 넘보는 것이 과연 현대차의 장기적 발전에 유익한지는 의문이다.
 
정의선 회장의 주력계열사 지분은 충분하지 않다. 현대차 2.62%, 기아차 1.74% 등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지분이 작다는 것이 큰 불안요인은 아니니 괘념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정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반대나 이의가 제기된 적이 거의 없다. 창업자 3세라는 것이 아직 존중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족한 지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채우면 되는 것이다. 정 회장의 경영능력은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한다. 재벌총수의 지위는 그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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