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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세들 광폭 '이너서클'…"경쟁보다 공유"
2·3세 협력해 '노하우' 나누고 '합작사' 세우고
2017-05-30 06:00:00 2017-05-30 06:00:00
[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재계 오너가 3세들의 광폭 이너서클이 주목받고 있다. 재벌 2·3세간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서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노하우는 공유하고 합작사 등 사업협력에 나서며 '윈-윈'을 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예전 1세대들은 친분은 친분이고 사업은 경쟁이라는 2분법적 사고가 짙었다. 
 
1세대 창업주 시절 오로지 경쟁에만 몰두했던 시절과는 상반된 행보라 할 만하다. 경영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옆에서 지켜봐 왔던 3세들은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협력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성과에 대한 목표 의식도 뚜렷하다. 창업주의 후손들이 기꺼이 손을 잡기 시작한 이유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부회장은 지난 25일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전격 방문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조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숙원 사업인 서울 삼성동의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착공을 앞두고 정 부회장이 신 회장으로부터 초고층 빌딩 건립과 운영 방안 등 다양한 조언을 얻기 위한 방문이었다는 게 주된 관측이다.
 
정 부회장은 이날 롯데월드타워 지하 1층에서 신 회장과 만나 117층에 위치한 서울 스카이(롯데월드타워 전망대)까지 함께 입장했다. 정 부회장은 신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전망대 내부의 주요 시설들을 빠짐없이 둘러보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정 부회장과 신 회장은 초고층 전망대 외에도 롯데월드타워에 위치한 업무시설과 호텔, 레지던스 등을 함께 둘러봤고, 약 2시간 동안 저녁식사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4년 10조5500억원을 투자해 서울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매입한 뒤 미래 심장부가 될 GBC를 건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GBC의 메인 타워인 현대차그룹 통합 사옥은 105층, 총 569m 높이의 초고층 건물로 지어질 것이라는 청사진도 밝힌 상태다. 이는 123층, 555m인 롯데월드타워를 넘어서는 높이다. GBC에는 통합 사옥 외에도 40층 규모의 호텔과 업무시설, 7층 공연장, 자동차 테마파크 등 다양한 건물들이 함께 조성된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그룹은 GBC 건립을 놓고 인근 사찰 봉은사와 갈등을 빚는등 진통을 겪고 있다. 일각에선 착공이 내년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 부회장이 초고층 타워를 필두로 한 랜드마크 선점의 경쟁자라 할 수도 있는 신 회장과의 만남을 자처한 것도 과거 롯데월드타워 건설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반발 등으로 난관에 부딪혔던 신동빈 회장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지난 4월 중국 출장을 다녀온 정 부회장도 최근 사드 위기 돌파에 골몰 중인 신 회장에게 중국 현지상황을 전하는 등 아낌없는 조언을 해줬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에도 중국 차기 지도자들과 잇따라 회동하는 등 중국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만큼 최근 위기에 빠진 롯데와 신 회장의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과도 맞손을 잡은 바 있다. 신세계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단독 전시 체험관을 입점 시킨 것이다. 스타필드 하남에 제네시스 1호 전시장이 들어선 데는 정의선 부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은 당초 스타필드 하남에 제네시스 전시장만 입점시킬 예정이었으나 개장하기 전에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아 둘러본 뒤 스타필드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추가로 입점시키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삼성가 3세인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과 범현대가 2세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의기투합한 면세점도 대표적인 협업 사례다. 이미 신라아이파크 면세점을 탄생 시킨 두 사람은 지난해 HDC신라면세점을 위해 또 한번 힘을 모았다. 기업 문화가 전혀 다른 삼성가와 현대가의 두 사람은 면세점 사업 확대와 진출이라는 각각의 명분만을 바라보고 손을 잡았고 실익을 톡톡히 챙겼다.
 
재계 3세간 사이의 협력 관계는 M&A 시장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2015년 이뤄진 삼성과 롯데가 단행한 화학계열사 M&A는 당시 초대형 '빅딜'로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삼성가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이 롯데가 2세인 신동빈 회장과 직접 만나 논의한 끝에 성사됐다. 3조원에 달하는 M&A로 일각에선 창업주들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래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경영권을 쥐고 있는 재계 3세들은 모두 선대가 회사를 이끌던 어렸을때부터 가족 등을 통한 인맥으로 사업적 의견을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이라며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위기상황도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만큼 서로 지혜를 모아 협업하는 사례가 앞으로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맨왼쪽),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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