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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4년 넘게 근무'한 영어회화전문강사 계약해지는 '부당해고'"
"계약갱신 반복했으면 무기계약자" 첫 판결…정부 '비정규직 대책' 힘 받을 듯
2017-06-26 03:00:00 2017-06-26 13:28:30
[뉴스토마토 김광연·조용훈기자]4년 이상 근무한 영어회화전문강사에 대해 학교 측이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며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장기간 근무하면서도 지위가 늘 불안했던 영어회화전문강사의 법적 지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첫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한 가운데 나온 것으로, 판결이 확정될 경우 문 대통령 정책에도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 중앙노동위 상대 항소심서 패소
 
대전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허용석)는 광주시와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등이 박준성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재심판정을 취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광주시가 공립초등학교 계약직 영어회화전문강사로 4년 넘게 일한 강사 임모씨와 윤모씨 등과의 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윤씨와 임씨는 기간제근로자로서 수 차례의 계약갱신 및 재채용 절차를 반복하면서 2010년 3월1일부터 2015년 2월28일까지 4년을 초과해 계속 근무했다고 봄이 타당하고 이에 따라 임씨 등은 기간제법 4조2항의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결국 임씨 등에 대한 광주시의 2015년 2월28일자 계약기간 만료 통보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개경쟁으로 다시 채용해도 계약 계속"
 
재판부는 특히 "광주시가 법제처 회신에 따라 공개채용절차를 거쳐 임씨 등을 채용할 경우 기간제법 4조2항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미 4년 동안 근무한 영어회화 전문강사도 포함해 공개채용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용자의 주관적인 의도에 따라 기간제법 4조2항의 적용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정은 근로관계의 계속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고려할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임씨 등은 2010년 3월1일 광주시 소속 학교에 영어회화 강사로 채용돼 근무하던 중 2015년 2월28일 계약기간 만료를 통보받았다. 이들은 근로계약기간 만료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그해 5월22일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노동위원회는 임씨 등과 학교의 근로관계는 계약기간 만료로 종료됐다며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초심판정에 불복한 임씨 등은 그해 8월 중앙노동위원회에 초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재심을 신청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임씨 등에 대한 해고처분은 부당해고”라면서 “광주시 등에 이들을 30일 이내에 복직시키라”고 판정했다. 이에 광주시 등이 불복해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재심 판정을 취소하라며 광주시 등의 손을 들어줬고 중앙노동위원회가 항소했다.
 
교육부, 기간제법 고려 안 하고 입법
 
2009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실용영어교육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대대적인 채용한 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들에 대한 사용기간을 최대 4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는 기간제근로자를 2년을 초과해 사용하는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현행 기간제법 내용과 배치돼 논란을 낳았다.
 
올해로 영어회화전문강사 8년차인 최경희씨는 “2009년 합격한 영어회화전문강사 중 일부는 전 직장에서의 정규직 신분을 내던지고 오거나 심지어 임용시험을 준비를 포기하고 합격한 사람도 있다”며 “이들 모두가 1~3차에 걸친 공개채용 시험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기간제 교원이 아닌 ‘교원 외의 자’로 교육을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법 내 기간제법을 적용받아야 한다”며 “정부 정책으로 그 많은 인원을 뽑았으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정부에게 있지 않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2700여명, 고용불안으로 학교 떠나
 
이날 교육부에 따르면 영어회화전문강사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지난 2011년으로 당시 약 6000여명의 강사들이 일선 학교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그 인원이 줄어 3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영어회화전문강사를 그만둔 이들은 불안한 고용신분과 나아지지 않는 처우 등 저마다의 이유로 자의반 타의반 학교를 떠났다. 무엇보다 올해 여름(300여명)과 겨울(1500여명)에는 근무기간이 4년을 초과해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영어회화전문강사 인원만 전국에 1800여명에 달한다.
 
문제는 높아진 경쟁률 탓에 신규채용에 응시한다고 해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할 경우 사용자인 교육감을 대신해 각 학교장이 교육과정 운영계획에 따라 영어회화전문강사 운영을 중단할 수도 있다. 올해 초 경기도 의정부여중에서는 영어회화전문강사 윤모(29)씨가 영어회화전문강사 운영에 있어 부당함을 제기하자 학교측이 더 이상 영어회화전문강사를 운영하지 않겠다며 윤씨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윤씨의 경우 같은 학교에서 3년째 근무 중이었고, 계약갱신을 통해 1년 더 근무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교육청, 위반학교 '솜방망이' 처분
 
지난해 12월 윤씨는 업무편람에 맞게 영어회화전문강사 수업을 수준별 맞춤 수업이나 소규모 수업 형태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며 경기도교육청에 감사를 청구했다. 감사결과, 해당 학교는 지난 3년간 정규수업 일부를 윤씨 앞으로 편성해 기존 정교사의 주당 책임수업시수를 줄이거나 시험 문제 출제자 명단에서 윤씨를 누락시키는 등 운영에 있어 다수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의정부교육지원청은 관련자들에 대해 가장 낮은 행정처분인 ‘주의’ 및 ‘경고’를 내렸지만 이미 윤씨는 학교를 떠난 뒤였다. 이후 윤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소했고, 이에 지난 9일 법원은 기각결정을 내렸다. 윤씨는 다음달 중 판결문을 확인하는 대로 재심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학교 비정규직은 교육공무직원(학교회계직원) 14만1173명과 비정규직 강사 16만4870명, 파견·용역 2만7266명, 기간제 교사 4만6666명 등 약 38만명에 이른다. 영어회화전문강사를 비롯해 급식 조리원 등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 5만여명은 오는 30일 서울에서 열리는 민주노총 총파업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29일 광주광역시교육청 앞에서 광주 지역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이 고용보장 및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최경희 영어회화전문강사
 
 
김광연·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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