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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우리에게 조선족이란
2017-06-28 06:00:00 2017-06-28 06:00:00
[뉴스토마토 권순철기자]최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다녀왔다. 연변의 대표적인 시인 연길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란 것은 공항 간판이었다. 한글과 한자로 연길공항이라는 말이 나란히 쓰여 있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보호정책에 따라 연변지역에서 우리 언어와 문자사용을 의무화 했고, 자치주의 장도 조선족이 맡도록 하고 있다. 연변지역을 지나다보면 마치 한국에 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우리 문화가 깊숙이 배어있다.
 
연변에서의 일정은 일제의 만행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간도일본 총영사관, 민족 시인인 윤동주의 생가가 있는 용정, 우리 민족의 영지인 백두산, 그리고 북한과 중국 및 러시아의 국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방천지역을 둘러보고 북한이 손에 닿을 듯한 두만강을 따라 다시 연길로 오는 여정이었다.
비록 짧은 여정이었지만 연변 동포들의 삶의 발자취를 본 느낌은 그들이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이들은 1860년대 말부터 북한 함경도지역에 심한 자연재해로 삶이 궁핍해지자 죽음을 무릅쓰고 두만강을 월경해서 이 북간도 지역에 터전을 만들었다. 이들이 조선족 1세대였다. 1세대는 이미 이 세상을 등진지 오래다. 현재 연변의 40∼50대들은 조선족 3세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 한 후 이 지역의 땅을 개간시키기 위해 경상도, 전라도 등 남한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1905년 한일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방 사건 이후에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지역에서 독립을 준비할 수 있는 거점이 됐다.
 
윤동주가 다닌 용정의 명동학교에 가보니 조국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미래의 독립운동가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이 당시 학교이름만 봐도 이 지역에서 조국을 얼마나 사랑했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명동중교(조선을 밝힌다), 창동중학교(조선을 창성시킨다), 광동중학교(조선을 넓힌다)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10여년동안 뿌린 독립운동의 씨앗은 국내에서 3·1운동과 연변에서 3·13만세시위 운동으로 발현됐다. 하지만 비폭력 평화운동은 일본군의 총 칼 앞에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평화적 비무장 운동만으로는 우리 민족의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곳도 바로 이 곳이었다. 이에 따라 이 곳에서는 3·1운동 이후 군대를 조직하고 군사를 양성해 항일무장투쟁에 나선다. 험한 산악지형에 익숙한 독립군들은 게릴라식 전투로 일본 정규군들을 무찌르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등이 바로 이 때 전투였다.
 
이후 일본군이 만주지역을 점령한 가운데 중국 본토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발발했다.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은 공산당을 지원했다. 결국 공산당이 승리하므로써 조선족들은 이 지역에서 당당히 주인으로 살게 됐다. 주로 농업으로 생활을 하는 조선족들은 우리보다 넉넉하지는 않다.
 
그래서 조선족들은 언제부터인가 대량으로 한국에 들어와 건설노동자, 식당 서빙, 간병인 등 온갖 궂은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조선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매스컴도 한 몫 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조선족은 살인 청부업자, 몰지각한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고, 조선족이 관여된 살인사건 등은 대서특필된다.
 
하지만 내가 본 조선족들은 누구보다 근면하고 착했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을 잇는 가교역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남북한과 연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은 조선족에 대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봤으면 한다.
 
권순철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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