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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포스코와 KT의 ‘한숨’
2017-11-21 16:41:54 2017-11-22 07:35:10
시련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설마’라는 물음으로 바뀌었다. 저변에는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된 CEO 퇴진 수난사가 있다. 때문인지, 포스코와 KT 고위층은 본연의 사업보다 청와대 기류를 살피기 바쁘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 한마디는 언질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는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매서운 칼바람보다 더한 한파로 포스코와 KT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렇게 2017년 겨울이 다가왔다.
 
시그널로 감지되는 움직임도 실제 있었다. 포스코는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 수행을 간절히 원했다. 전경련의 몰락으로 정부와 재계의 유일한 창구가 된 대한상의를 통해 경제사절단 참가 신청을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 6월 방미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때만 해도 애써 스스로를 달랠 명분이 있었다. 북핵 위협 앞에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는 통상 마찰로 비쳐질 일체의 움직임을 피해야 했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에 반덤핑 관세 부과 등 무역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 포스코의 동행은 부담이 됐을 수 있다. 대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겠다는 기업들로 사절단을 꾸렸다. 철저한 비즈니스맨인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투자'라는 선물 보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인도네시아 방문은 달랐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 300만t 규모의 해외 첫 일관제철소를 가동 중인 데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가운데 투자 규모도 가장 커 양국의 경제협력 파트너로 최적의 대상이었다. 
 
사정은 KT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의 해외 순방시 꾸려졌던 경제사절단에 황창규 회장은 단 한 차례도 동행하지 못했다. 게다가, 신경민 의원을 비롯해 몇몇 여당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황 회장에게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5G 공식 데뷔전으로 치러질 평창 동계올림픽이 눈에 들어올 리 없게끔 내몰았다.
 
빌미는 포스코와 KT가 제공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일부 연루된 점은 ‘부역’이라는 오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족쇄가 됐다. 포스코는 초대 박태준 회장을 시작으로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까지 현 권오준 회장의 전임자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한 악몽이 있다. 청와대 의중을 거스르고 버틸 경우 예외 없이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당국이 동원됐다. KT 역시 연임을 포기한 이용경 회장을 제외한 남중수, 이석채 전임자 모두 정권 교체기마다 사정당국의 칼을 맞아야 했다. 때문에 마치 법칙처럼 되풀이되는 수난사는 최대 적폐로 꼽히는 최순실과 맞물려 “이번에도 또?”라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항변도 가능하다. 권오준 회장은 전임자 정준양 회장이 벌려놓은 문어발식 확장을 정리하고, 본연의 철강 경쟁력 회복에 힘썼다. 정 회장 퇴임 당시인 2014년 1분기 7312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올 3분기 1조1257억원으로 급증했고, 부채비율도 90.1%에서 68.1%로 낮췄다. KT 또한 이석채 회장이 물러났던 2013년 3분기 3078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올 3분기 3773억원으로 늘었고, 부채비율도 157.8%에서 121.1%로 낮춰 재무구조가 안정화됐다. '황의 법칙'이 이동통신시장에서도 통했다는 평가 속에 KT의 고질병이던 관료화도 차단했다. 권 회장은 중국발 공급과잉, 황 회장은 시장정체와 출혈경쟁이라는 각각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들을 잃고 싶지 않음은 당연하다.
 
반대로 정권 입장에서 보면 주인 없는 기업인 포스코와 KT의 수장 자리를 제 사람으로 심고 싶음도 인지상정이다. 이를 통해 공직을 얻지 못한 여러 공신들을 챙길 수도 있다. 전례도 그랬다. 그러나 이는 적폐의 연속이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내려간 전임자들 모두 정권 눈치만 살피다 포스코와 KT를 나락으로 내몰았다. 자기 잇속에 국민기업은 넝마가 되었으며, 그 피해는 온전히 국가경제의 몫이었다. 적폐를 끊기 위해 적폐의 수단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이기에 가능한 바램이다.
 
산업1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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