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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노조추천 이사가 필요한 곳이 있다
2018-03-21 06:00:00 2018-03-21 06:00:00
지난해 11월 KB금융 노조는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가 임시주주총회에서 부결됐다. 하승수 변호사는 공인회계사로서 현대증권 사외이사 및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노조는 그가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경영 투명성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그 시도는 일단 무산됐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코스콤 노사는 노동자 추천 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로 설치된 금융행정혁신위도 지난해 12월 노동자 추천인사가 이사로 참여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금융위에 권고했다.
 
불씨는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되살아났다. KB금융 노조와 우리사주조합이 지난달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주주제안 발의서를 KB금융에 제출했다. 지난해와 달리 주주의 자격으로 제안했으니 무게가 더 실린 셈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도 이에 대한 '찬성'을 권고했다. 독립적이고 경영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로서 적합하다는 판단에서였다.
 
KB금융 이사회는 예상대로 반대입장을 정했다. 주총이 열리기도 전에 이사회에서 반대하기로 결정하고 공시까지 해버렸다. 미리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맞서 KB노조와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이사회가 채용비리 등 문제에는 침묵하면서 직원들이 주주 자격으로 실시한 주주제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비판했다.
 
해외 의결권 자문사인 ISS도 지난해 임시주총에 이어 올해도 반대의사를 권고했다. 때문에 노조추천 사외이사가 주총에서 받아들여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른 금융사의 경우 노조추천 사외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조용하다. 따라서 노조추천 사외이사제가 우리나라 금융사나 기업에서 뿌리를 내리기는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
 
최근 거론되는 노조추천 사외이사제는 노조원이 직접 이사로 들어가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경영풍토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투명한 경영과 합리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불투명하고 무리한 경영판단을 견제함으로써 기업가치 훼손을 방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재벌의 경우 일감몰아주기 구태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그런 견제역을 맡아야 할 사외이사회들이 지금까지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금융사와 기업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투자와 무모한 결정을 내리곤 했다. 일부 금융사는 무리하게 해외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고 퇴각했다. 재벌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은 엉뚱한 곳에 회사자금을 내놓기도 했다. 더욱이 많은 재벌들은 총수 친인척 기업에 버젓이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책임지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 도리어 이런 무책임경영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많은 사외이사들이 올해 주총에서도 다시 후보로 추천됐다.
 
반면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경우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해낼 수 있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비록 1명에 지나지 않지만 경영진으로서는 그를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특히 재벌들의 친인척 일감몰아주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본격 도입됐다. 그 이전부터 추진됐지만, 기업비밀 누설이나 경영간섭을 이유로 재계가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런 완강한 반대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무너졌다. 더 이상 반대할 명분과 설득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감몰아주기 등 재벌총수의 전횡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사외이사들이 ‘고무도장’ 노릇을 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제 사외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 그 방안의 하나가 바로 노조추천 사외이사라고 할 수 있다. 경영진의 입장에서도 유익한 측면이 있다. 특히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는 기업의 경우 노조와의 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때로는 노조추천 이사가 경영진을 대신해서 노조설득에 나설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노조추천 사외이사는 사실 재벌기업에 더 시급하다. 그렇지만 금융혁신위 지적대로 민간금융사나 기업에 당장 강요할 수는 없다. 금융혁신위 권고대로 정부출연 금융기관이나 공기업이 앞장설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열쇠를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아직 소극적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굳이 하기 싫다면 사외이사제의 실효성을 높일 다른 방안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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