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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한국거래소, 중국주 상폐에 책임 없다지만
2018-06-08 07:00:00 2018-06-08 11:16:33
백화점, TV홈쇼핑, 인터넷쇼핑 등은 유통업체다. 스스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든 것을 가져다가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살 수 있는 물건·서비스라도 굳이 백화점이나 홈쇼핑을 통해 사는 경우가 많다. 가격이 더 싸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유통업체가 주는 신뢰감 때문일 것이다. ‘이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이라면 괜찮겠지’와 같은 믿음.
 
이런 믿음은 곧 로열티(royalty), 즉 고객 충성도를 만들어 주고 유통업체들은 이 로열티를 쌓아올리기 위해 또 잃지 않기 위해 인적, 물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물건에 하자가 생기면 그 즉시 사과하고 교체 또는 환불해준다. 심지어 진상고객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에도.
 
한국거래소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거래소는 국내외 기업을 자본시장에 선보여 ‘판매’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기업이 증시에 공개되면 해당기업은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팔아 기업이 성장하는 데 쓸 수 있고, 거래소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챙긴다. 무언가는 금전적 이익이기도 하고 한국 자본시장에서의 존재감 또는 권위일 수도 있다.
 
중개한다는 점에서는 유통업체를 쏙 빼닮았는데 로열티에는 무신경해 보인다. 투자자들에게 소개하고 판매한 물건(기업)에 하자가 생겨도 A/S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이 또 상장적격성 심사를 받고 있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차이나하오란이다. 이에 앞서 완리는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됐다. 작년 가을엔 중국원양자원이 쫓겨났다. 매년 한두 종목씩 이런 일이 생기니 연례행사처럼 돼 버렸다.
 
이들은 모두 중국 복건성에 사업자회사를 둔 기업들이다. 한국거래소가 야심차게 해외로 발을 넓혀 한국증시로 상장을 유치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숫자로 나타난 실적 성장세는 폭발적이었고 주가는 쌌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다. 한국거래소는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상장 당시에는 괜찮았다”고 발뺌한다.
 
2013~2014년 이들이 중국과 홍콩, 한국으로의 송금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을 당시 주가는 폭락했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중국기업들이 실체가 없고 주식지분도 소용없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이를 알아보기 위해 거래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상장심사 부서, 공시 부서를 모두 취재했다. 담당자들은 “투자자들의 오해”라고 일축했다. 50% 지분을 가져도 경영권을 가질 수 없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말이 안 된다.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상장폐지된 중국원양자원의 국내 주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억대 돈을 쓰고도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시 묻고 싶다. 국내상장 중국기업의 주식으로 중국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게 맞는가? 해외기업과의 소송 지원 같은 A/S는 꿈도 못 꾸겠지만, 적어도 이 문제는 해결이 돼야 자본시장이라는 좌판에 물건을 깔아놓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자기가 판매한 물건과 서비스에 책임지지 않는 백화점이었다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아 일찌감치 문을 닫았을 텐데 독점이라 괜찮은가 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165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투자자들이 국내상장 중국기업에 투자해 입은 손실은 2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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