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정부 행사의 엄숙함과 감동 사이
입력 : 2018-06-08 06:00:00 수정 : 2018-06-08 06:00:00
최한영 정치부 기자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 영상을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종문화회관 좌석 앞줄에 정부 고위관료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이들은 두꺼운 겨울용 점퍼를 신문배달원·광부들에게 입혀주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다. 점퍼를 입은 사람들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행사명은 그 이름도 묵직한 ‘1983년 말 각하하사품 전달식’이었다. 이름에서부터 분위기는 무거웠다. 외부 활동이 많은 서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불과 35년 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전달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경우는 달라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정부주관 행사는 감동은 없고 지루한 것’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사진·영상을 담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가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기자가 중학교 2학년 때인 1998년 5월8일, 경기 평택 안성천에서 열린 환경부 한강환경관리청 주최 황소개구리 퇴치행사도 그랬다. 최재욱 당시 환경부 장관과 이긍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비롯해 1000여명이 참여했지만 포획한 황소개구리는 한 마리에 불과했다. 참가 학생들은 구석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냈다. 사전답사 부족이 원인이었으나 현장에 있던 정부 관계자는 “행사 소식을 듣고 황소개구리들이 전부 도망갔다”는 농담 가득한 발언으로 무마했다. 기억 속 정부 행사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도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각종 기념일 행사에 감동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있다.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도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식 시작 10분 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고 김기억 육군 중사 등이 안장된 무연고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청와대 측은 “유가족이 없어 잊혀져가는 국가유공자를 국가가 끝까지 잊지 않고 기리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추념식 추모곡으로 김민기 작곡 ‘늙은 군인의 노래’가 연주된 것도 이채로웠다. 이 노래는 김씨가 군 생활 중 30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앞둔 병기선임하사의 요청으로 만들었다. 부사관의 애환과 설움을 진솔하게 담아냈지만 유신체제 당시 국방부 장관 지정 금지곡 1호가 됐다. 군인들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멜로디가 서정적일 따름이지 군인의 애국심도 잘 표현된 이 노래는 현충일 추념식을 통해 그 존재를 다시 알렸다. 가족과 이웃의 가치를 녹여낸 문 대통령 추념사에는 가수 장미여관의 노래 ‘우리, 함께’가 어우러졌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기념식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구성이 하나 둘 쌓이면서 호평도 나오고 있다. 각종 기념일이 쉬는 날로만 치부되지 않게 하기 위해, 기념식 행사에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 ‘정부 기념식을 집중해서 본 것은 처음’이라는 반응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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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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