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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재벌에 드리운 최순실 악몽
2018-08-16 16:19:14 2018-08-16 16:26:24
왕해나 산업1부 기자
성경에는 세금(출연금)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예수를 모함하던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세금을 하나님께 내는 게 옳으냐, 가이사(로마의 황제)에게 내는 게 옳으냐”고 물었다. 이에 예수는 현답을 남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본지 13일자 1면를 통해 ‘최순실의 K스포츠 “288억원 강제 출연금 돌려주겠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해당 기업들은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출연금은 K스포츠의 것인가, 아니면 기업이 돌려받아야 하는 것인가.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서 나온 답변은 명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재단 설립 및 모금 과정에서 최씨의 직권남용 및 강요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기업들의 뇌물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내렸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기업들은 법적으로 강요죄의 피해자임이 인정됐다.
 
하지만 기업들은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몇몇은 “다시는 미르·K스포츠와 엮이기 싫다”는 반응이다. “출연금을 돌려 달라”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함으로써 또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기업 관계자들은 “마음 같아서는 전부 돌려받고 싶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앞서 미르재단이 청산될 때 재단에 부당이득 반환을 요청하고 해당 채권을 신고할 수 있었음에도, 462억원의 잔여재산이 국고로 환수되도록 방치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뇌물’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돌려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법원이 ‘강요에 억울하게 돈을 빼앗긴 피해자’라고 인정했음에도 돈을 돌려받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뇌물 아니냐”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주주들의 돈을 빼앗기고도 적극적인 반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물론 기업이 두려워하는 여론의 시선 끝에는 자신들의 원죄가 있다. 과거 정권과 유착해온 재벌들의 관행이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는 재벌개혁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를 낳았으며, 국민의 반재벌 정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그럼에도 재단의 출연금이 돌아가야 할 곳은 명확하다. 기업의 것은 기업에게다. 기업이 돌아가야 할 곳도 명백하다. 공정경쟁, 이익 실현, 일자리 창출, 투자다.
 
왕해나 산업1부 기자(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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