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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의 철학을 묻다…현대중공업에 던져진 '의미'
송호근 교수, 현대중공업 특강…"미래 준비·자기희생으로 불황에 맞서야"
2018-09-05 11:01:08 2018-09-05 13:33:42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현대중공업이 만든 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송호근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인문사회학부장)가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사보 최근호를 통해 여름휴가 직전인 지난 7월14일 울산 회사 본관에서 가진 송 교수의 월례 특강 내용을 소개했다. 송 교수는 지난해 현대자동차, 올해 포스코 등 국내 대표 제조업체들을 찾아 시설과 기업문화 등을 체험한 뒤 ‘가보지 않은 길’과 ‘혁신의 용광로’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노사 문제를 비롯한 현안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4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가진 특별강연에서는 “조선업계 세계 1위를 달리던 현대중공업이 최근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것도 호황기에 제대로 대응 체제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문제의' 현대중공업을 찾았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가 지난 7월 14일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본관에서 회사 임직원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그가 던진 질문은 '의미'라는 본질이었다. 단순히 배를 수주해 만들어 납품하는, 매출적 의미가 아니라 세계 조선업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철학을 묻는 근원적 질문이었다. 산업 간 경계가 붕괴되고, 융·복합이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을 맞아 한국 제조업의 근간인 조선산업의 길을 제시하라는 주문과도 같다. 문제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조선산업 전체를 놓고 봐도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노사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대한민국은 조선 최강국이지만 노동과 경영의 협력이 부족해 위기에 무너지기 쉬운 최약체 국가”라고 진단한 송 교수는 “미래를 위한 대비책 준비나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불황에 맞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관리직은 노동조합과 사회적 고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얘기해야 하며, 노조가 변한다면 내부적인 문제는 어느 순간 극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포스코의 ‘노경협의회’와 같은 노사 관계의 새 모델 도입을 제시했다. 그는 “노경협의회는 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등 작업장을 도와주는 생활 조직”이라면서 “노경협의회를 통해 회사는 직원들 간의 상호신뢰와 협력 문화, 공공 의식을 생산해 낸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세대교체 문제도 당면과제로 바라봤다. 조선소의 주를 이루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대거 은퇴하고 있지만 입사하는 젊은 직원들의 수는 적어 현장에서는 세대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송 교수는 “허리층이 가장 얇은 모래시계형 인력 구조에서 신세대와 구세대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또, 우리 곁을 떠난 정주영 창업자의 카리스마와 직원들의 열정을 무엇으로 지필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안팎의 도움이 필요하고, 거버넌스 측면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된다고도 했다. 생산성 동맹은 기술이 현장 직원들의 태도를 결정하고, 열정과 헌신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기술 중심으로 작업현장을 만들면 작업 몰입도가 높아지고 기업 충성심이 올라가는 등 기술의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가의 여부가 작업 현장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학습·토론·혁신하는 조직문화, 관리직의 권한 향상, 지역사회와 연계한 작업조직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외주 협력사와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는 40여년간 이룬 현대중공업의 기적을 다시 살리는 과제다. 성공이 낳은 위기이자 시대의 과제이면서 한반도 산업구조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과제이기도 하다”면서 “기술이 현장 직원들의 태도를 결정하고, 열정과 헌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송 교수는 결론적으로 “현대중공업이 국민에게는 사랑을, 직원들에게는 자부심을, 젊은이들에게는 꿈을 주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시민들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에게 어떻게 신뢰를 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한편 조선업 최강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혁신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이를 알려 신뢰와 응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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