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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음바페와 주윤발, 그리고 한국 유명인들
2018-10-23 06:00:00 2018-10-23 06:00:00
불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는 ‘귀족으로 행세하려는 사람은 고결하게 행동하라’는, 두 번째는 ‘사람은 직책에 맞게, 혹은 얻어진 명성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국 언론들이 자주 사용한다. 세금을 포탈한 재벌들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자수성가한 사장이 가난한 이웃을 도우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 한다.
 
정작 프랑스 언론들은 이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다만 명성에 걸맞은 행동으로 사회 참여를 하는 사람들의 미담을 자주 전파한다. 요즘은 연일 19세의 한 청년이야기로 분주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프랑스 국가대표 킬리앙 음바페(Kylian Mbappe)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10월22일 국제판 표지 모델로 음바페를 선정하고 지난 11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타임은 음바페와의 인터뷰에서 왜 그가 월드컵 우승 포상으로 받은 35만 유로(한화 약 4억6000만원)를 <로프의 인도자(Premiers de Cordee)>라는 한 장애인 단체에 기부했는지 물었다. 이에 음바페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국가대표로 돈을 받을 필요가 없다. 나는 충분히, 아니 많이 벌고 있다. 따라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다. 이는 내게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나는 스폰서로서 이 단체에 돈을 기부했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스포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AS모나코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음바페는 매우 빨리 스타가 됐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내 인생은 충격적이었다. 파리생제르맹(PSG)에서 매우 빨리 부상했고, 이는 나를 화제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월드컵이 있었다. 비록 나는 매우 기쁘고 내가 항상 꿈꾸던 삶을 가졌다.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보통 사람들이 청년기에 친구들과 외출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그러한 삶을 모른다. 나는 갑자기 성인들의 세계로 들어갔고, 사람들은 내가 성인처럼 행동하도록 요구했다. 우리 팀원들 중에는 잔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처럼 30살 혹은 35살, 심지어 40살도 있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세계에 적응하길 요구했다”고 인간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프랑스 언론들도 음바페 이야기를 하기 바쁘다. <르 파리지앵>은 “월드컵 우승 후 이 멋진 청년(음바페)은 자신의 고향을 세 번째 방문했다. 그는 갈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프랑스 삼색기가 그려진 T셔츠를 나눠준다. 몇 년 전 그의 가족은 봉디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아직도 봉디의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눈다”고 전했다.
 
음바페는 파리 북동부에 위치한 샌 생 드니(Seine-Saint-Denis) 지방의 봉디(Bondy)에서 자랐다. 봉디는 빈민촌으로 5만40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이중 40%(2만2000여명)가 30세 미만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에게 음바페는 닮고 싶은 모델이다. 그러나 음바페는 “사람들이 나를 봉디의 다른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편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롤 모델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라며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음바페는 아직 어리다. 따라서 그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 이후 보여준 그의 다양한 활동들은 화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세계 최고의 축구 신동이 꿈꾸는 것은 또래 친구와 외출해 노는 것이지만,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이라는 사실을 벌써 깨닫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이러한 사람이 음바페 만은 아니다. 지난 주 톱뉴스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홍콩 배우 주윤발도 있다. 주윤발은 8000억원대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평소 대중교통을 애용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장을 보고 할인매장에서 옷을 사는 등 평범한 일상을 즐긴다고 한다.
 
음바페와 주윤발 모두 보통 사람들의 보통 생활을 꿈꾸지만 삶을 살아가는 철학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 한국에서도 이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런 감동적인 일화 앞에 우리가 반성해 볼 점이 분명 있다. 한국의 많은 유명인들은 돈을 벌면 건물을 산다. 청담동 건물주들 중 많은 이들이 유명 연예인들이다. 루머인지 모르겠으나 서울 부동산 값이 뛰는데 이들이 한몫했다는 설도 있다. 일부 방송은 부동산으로 돈을 번 유명인들의 에피소드를 자주 전파하며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조장한다. 시청률만 올리면 된다는 언론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주범들을 성공의 화신으로 미화하는 언론들. 그들은 우리 사회를 황금만능주의의 수렁으로 몰고 간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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