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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마약왕’, 갇힌 맹수의 처연한 마지막 ‘발악’
2018-12-17 00:00:00 2018-12-18 23:03:28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대한민국의 민 낯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 내고 까발린 듯한 가짜였던 영화 내부자들은 사실 진짜였다. 이 영화 속 그것들이 실체로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었다지만 연출을 맡았던 우민호 감독의 시선은 이 영화 한 편으로 격상의 지위를 획득하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파괴된 사나이’(2010년), ‘간첩’(2012) 단 두 편으로 증명해 냈던 연출력은 사실 의미가 없었다. 우 감독의 시선은 내부자들이란 걸출한 시나리오와 만나면서 한국 영화사에 전무후무할 인장을 남겨 버렸다. 이건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영화에 문외한 이라도 충분히 수긍될 결과물이다. 때문에 우 감독의 신작 마약왕에 대한 시선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해야 할까. 지난 14일 공개된 마약왕은 전작의 걸출함을 기대한 그것에는 분명히 모자라고 빈틈이 남아 돌았다. 우 감독 스스로가 전작의 무게감을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와 그 역사가 만들어 낸 괴물의 실체는 이미 전작 내부자들에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지 않았나. ‘마약왕은 전복된 대한민국의 현실 기반이 과연 어떤 전과의 기록 위에서 이뤄진 역사인지를 조명하는 일대기다. 그 전과는 다양하다. 한 가지로 규명될 수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스펙트럼은 너무도 화려하고 영화적이다. ‘마약왕은 금지된 욕망이 현실과 접점을 이룰 때 발생되는 힘의 논리가 어떤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를 낯뜨거운 시선으로 비춰준다. 사실 그 시선이 그리 따갑지는 않다. 앞서 설명한 내부자들의 아우라가 강했기 때문일까. 감독은 내부자들을 통해 느낀 대중의 충격을 상쇄할 만한 또 다른 물건을 선택하고 그것에 강한 힘을 준다. ‘금지의 대명사인 마약그리고 연기의 대명사인 송강호. ‘마약은 강력하고 또 강렬하다. 하지만 길게 끌고 가는 느낌은 약하다. 반면 송강호는 기기묘묘했다. 관객의 예상을 반박자 엇나가게 하는 호흡, 그리고 과하게 넘지는 않지만 찰랑거리게 담긴 물잔 위 물이 조금씩 넘치는 풍족한 느낌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전체는 예상에서 조금 모자랐고, 내부는 예상에서 조금 더 넘쳤다. 두 개의 모자람넘침이 상쇄돼야 하지만 묘하게 엇박자가 났다. 그래서 마약왕내부자들의 강렬함에 짓눌린 연출의 과함이 결과적으로 모자람을 만들어 낸 느낌이었다.
 
영화 '마약왕' 스틸. 사진/쇼박스
 
영화는 1970년대 부산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한 폭력조직원의 일대기에서 착안한 스토리다. 물론 기본 뼈대를 차용했을 뿐 영화 속 디테일한 근거와 스토리는 창작이다. 독재정권 시절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다. 대중문화는 금지의 시대였다. 저속한 문화는 곧바로 퇴출이란 미명아래 금지가 됐다. 영화 속 등장하는 대부분의 곡이 그 시절 금지곡들이다. 그리고 마약이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50년의 시간차를 두고 있지만 마약은 금지의 대명사다. 금지는 욕망이다. 주인공 이두삼(송강호)는 이 금지의 세계를 양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계의 틀을 깨버린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그는 이 금지의 세계를 통해 입신양명의 길을 꿰뚫어 본 입지전적의 달인처럼 그려졌다. 어느 정도의 실화가 첨가돼 있고, 마약의 미화는 절대 없다지만 인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명확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것이 아닌 개처럼 벌어 정승에게 쓰는 것이 돈이라고 일갈한다. 이두삼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금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 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금지의 영역에 녹아 들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아내 숙경(김소진)마약이나 바람이나 들키지 말아라며 외치던 그 목소리는 결국 이두삼 본인이 본인에게 속내를 들키지 말라는 조언이었던 것이다. 이두삼의 마약 사업을 돕던 최진필(이희준)이나 성강파 보스 조성강(조우진)도 조언했었다. ‘마약의 달콤함, 그 첫 맛을 있지 못해 폐가 망신하는 인간에 대한 조언이었다.
 
영화 '마약왕' 스틸. 사진/쇼박스
 
그럼에도 두삼이 마약에 집착하고 위로 올라가는 신분 상승에 집착한 것은 어찌 보면 시대의 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감독이 말하고 싶던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을 듯싶다. 1970년대 군사 정권은 쿠데타를 통해 성립된 권력이다. 당사자를 밟고 누르고 결국 패자로 만든 뒤 올라가는 구조의 사회적 행태가 만들어 진 계기가 됐다. 정당하진 못해도 정당함을 이뤄낼 수 있는 구조는 결국 힘이었다. 두삼은 언제나 굶어 죽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자신의 금지 행위를 정당화 시켰다. 정식한 방식으론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던 그였다. 그래서 택한 마약은 결국 그 시대가 만들어 낸 산물이고, 힘이었고, 논리였다. 또한 그 모든 것을 통해 권력의 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을 거머쥘 수 있었다. 두삼은 스스로가 괴물이 돼가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동생 두환(김대명)이 점차 마약에 취해 망가지는 모습 속에서도 그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마약을 통해 또 다른 권력의 곁을 탐하고만 있었다. 김정아(배두나)란 희대의 로비스트를 통해 신분 상승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사회가 시대가 만들어 낸 괴물이 이두삼이 아닌 스스로가 그 사회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괴물이 되는 것을 택하고 만 것이다.
 
영화 후반 이후부터 등장하는 두삼의 모습은 흡사 야수의 그것처럼 변모한다. 거대한 개인 공간 속 눈빛만이 살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모를 정도의 기괴함이 넘친다. 그는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듯했고, 죽은 것 같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마약이란 금지의 영역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신분 상승을 통해 권력의 이면으로 점차 자신을 동화시켜가던 그가 결국 파멸의 문 앞으로 다가서는 과정은 적나라하다 못해 섬뜩한 느낌까지 든다. 이 모습은 마약왕이란 제목자체가 담은 함의와 상징 두 가지를 드러낸 과정이다. 거대한 집안을 맨몸에 모피 코트를 입고 활보하며 독백하는 영화 말미의 이두삼은 그래서 철장 안에 붙잡힌 미친 맹수의 그것처럼 다가왔다. 마약에 취한 패악의 끝이 아닌 권력이 만들어 낸 괴물의 마지막처럼 처연했다.
 
영화 '마약왕' 스틸. 사진/쇼박스
 
그리고 마지막, 스크린에 새겨진 송강호의 알 수 없는 표정은 마약왕속 이두삼의 모든 것을 담은 단 한 장면으로서 말한다. 시대와 금지 그리고 마약과 권력 돈 욕망 중독이 만들어 낸 일대기의 논란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마약왕은 전체적으로 강렬하다. 한 남자의 일대기가 그려진다. 그 남자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내는지 점층적인 구조로 강렬함의 수위를 점차 높여간다. 높아지는 강렬함은 그래서 과하지만 순간순간의 납득이 가능해진다. 송강호란 배우의 아우라가 있었기에 그 납득은 쉽고 간결하다. 하지만 서사의 납득은 이뤄질지언정 영화 전체의 강렬함은 톤 앤 매너의 관점에서 수위 조절이 간결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마약이란 소재와 그 소재에 면죄부를 줄 수 없기에 이뤄낸 각각의 시퀀스별 결과론적 매듭이 강하게 옥죄어만 진 느낌이다. 반대급부로 영화 자체가 한 남자의 일대기이면서 시대상의 흐름과 함께하는 지점이라면 기승전결의 흐름이 간결해야 할 듯 싶었다. ‘마약왕은 금지의 영역에서만 자리하고 있는 마약욕망그리고 권력과 그 실체에 더욱 다가선 의 논리에만 집중한다. 이 같은 소재의 융합은 결과적으로 단 한 가지로만 매듭될 뿐이다. 파멸이다.
 
영화 '마약왕' 스틸. 사진/쇼박스
 
마약왕은 이미 한 남자의 파멸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각각 분절돼 있고, 그 분절된 분량이 너무도 강력한 인장만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유려함을 느낄 수 있는 착각도 가능하다. 그건 순전히 송강호란 배우의 능력치일 뿐이다.
 
마약왕을 만든 우민호 감독은 전작 내부자들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떤 논리 속에서 움직이고 지탱되고 또 만들어져 가고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선보였다.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있었다고 하지만 연출의 유려함은 분명했다. ‘마약왕에선 전작의 아우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듯 싶다. 하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을까. ‘내부자들의 기본적 틀을 차라리 답습이라도 했다면 송강호란 걸출함이 금지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선의 파괴를 보다 더 강렬하게 관객들이 느낄 기회를 줬을 듯 싶은데 말이다.
 
영화 '마약왕' 스틸. 사진/쇼박스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기엔 차고 넘치지만 전체의 성공이라고 하기엔 분명 모자람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개봉은 오는 19.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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