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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걸캅스’ 이성경 “정말 너무 많은 걸 내게 준 영화”
“무거운 소재 무겁지 않게 풀어간 재미있는 영화, 메시지도 강해”
“배우로서 고민 많던 시기, 선배들에게 정말 많은 것 배운 기회”
2019-05-16 00:00:00 2019-05-16 07:29:5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모델 출신의 이 길쭉한 여배우가 형사로 출연한다는 말에 고개가 갸우뚱했다. 우선 제대로 힘이나 쓸까란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가냘프다 못해 빼빼 마른 듯한 체형의 여배우가 격렬한 액션이 더해진 형사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당연히 그럴 만 하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제대로 된 액션 영화나 드라마는 단 한 번도 소화를 해본 적이 없다. 어떤 이유로 이 여배우가 이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우선 제목자체가 걸캅스라니 여배우 두 명이 필요하다. 먼저 캐스팅된 라미란은 충무로가 인정하는 확실한 존재감이다. 그 역시 데뷔 첫 주연이지만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워낙 빠른 순발력과 코미디 감각을 지닌 배우임은 정평이 나 있다. 반면 이성경은 드라마 위주의 활동을 해왔다. 필모그래피 중 영화 출연작도 액션이 아닌 코미디가 섞인 장르 영화만이다. 그마저도 조연급이었다. 물론 걸캅스를 본 뒤 그의 찰진 액션과 강단 넘치는 걸크러쉬 존재감은 이성경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173cm의 큰 키를 활용한 비주얼은 시원시원한 액션을 선보이는 탁월한 피지컬이었다.
 
배우 이성경.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두고 만난 이성경은 영화 속 거친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1990년생으로 올해 서른 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앳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패션 모델 출신답게 편안하게 입고 온 캐주얼한 스타일도 멋스러웠다. 물론 그는 배우로서의 DNA가 차고 넘쳤다. 데뷔 첫 스크린 주연작이란 타이틀이 제법 무거울 듯도 할 것이다. 첫 인사부터 그는 영화의 흥행 여부를 되물었다.
 
개봉하면 정말 재미있게 봐주실지 궁금해요. 기자님들이 남긴 리뷰도 많이 봤는데 아직은 그래도 꽤 괜찮다는 평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관객 분들이 정말 많이 봐주시면 좋겠는데(웃음). 촬영하는 기간 동안은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여자들이 많이 나오니 뭔가 유대감도 넘치는 것 같고. 하하하. 사건을 풀어내는 방식과 결과도 너무 통쾌하고.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분들도 진짜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이번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너무 좋았던 한 가지와 너무 놀랐던 한 가지를 각각 얘기했다. 먼저 좋았던 한 가지는 자신과 함께 호흡을 맞춘 선배 라미란의 존재감이었다. 그의 출연이 이성경의 출연 결정을 도운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했다. 두 번째로 놀랐던 점은 이 영화의 소재인 디지털 성범죄. 최근 버닝썬 사태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배우 이성경. 사진/CJ엔터테인먼트
 
진짜 평소에도 함께 꼭 연기해 보고 싶던 선배님이 출연하신 단 말에 무조건 출연을 외쳤죠. 완전 좋았어요(웃음). 무거운 소재를 무겁지 않게 풀어가는 데 선배님의 힘이 너무 강력하게 작용하잖아요. 소재는 정말 놀랐죠. 그 사건이 터지고 다들 놀랐어요. 너무 똑같아서. 뉴스에서나 봤던 사건을 경험하니 마음이 무거웠죠. 영화 속 대사처럼 크고 작은 사건 따로 있나란 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 같아요. 피해자들의 고통은 정말 엄청나거든요.”
 
디지털 성범죄피해자 고통 부문에서 이성경은 감정 이입이 되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화가 나는 듯한 표정일 짓기도 했다. 우선 그는 영화 속 피해자들과 같은 나이 또래의 친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워낙 사이가 좋은 살가운 자매라고 스스로 소개했다. 자신의 동생 뻘 되는 여자들이 실제로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된다고 하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영화 촬영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했다.
 
영화에서 피해자가 병실에 누워있는 장면이 있잖아요. 영화 전체로 보면 그렇게 중요한 장면은 아닌데 전 그 장면이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아요. 그 장면 찍을 때 현장에 있었는데, 피해자를 연기한 배우들이 제 동생 또래에요. 실제 동생으로 상상을 문뜩 했는데 제 눈이 질끈 감기더라고요. 진짜 지금도 상상도 하기 싫어요. 너무 마음이 힘들어 지더라고요. 무심코 지나치고 뉴스에서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사건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니 결코 지나칠 수 없겠더라고요.”
 
배우 이성경. 사진/CJ엔터테인먼트
 
비록 영화이지만 자신의 친 동생 또래의 여자들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들을 잡는 형사 역을 맡아야 하기에 액션은 필수였다. 그는 영화에서 뛰고 구르고 맞고 넘어지기를 수십 번 넘게 소화했다. 이성경은 웃으며 내가 운동 신경이 없다고 주변에서 걱정을 했다고 전했다. 그의 깡마른 체형이 액션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으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진짜 운동 못하는 것처럼 보이죠(웃음). 저 지금도 헬스장 가면 여자들 중에 제일 무거운 거 들고 운동해요. 하하하. 진짜에요. 제가 진짜 힘 못쓰게 보이는 체형인 것도 인정해요. 하하하. 드라마 촬영 막바지에 걸캅스에 합류해 운동과 촬영을 병행했는데. 액션 스쿨에 다니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때리는 거 맞는 거 구르는 거. 저 진짜 칭찬 많이 받았어요(웃음). 이젠 액션 완전 재미있어요.”
 
그는 이 영화에 합류하기 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고 한다. 솔직하게 고백한다면서 밝힌 걱정은 다름 아닌 정다원 감독이었다. 연출을 맡은 정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 출신이다. 연기는 물론 시나리오와 연출 등을 겸하는 팔방미인으로 소문난 독립영화계의 실력파 영화인이다. 이번 영화로 상업 장편 영화 데뷔를 하게 됐다. 여러 편의 영화에서 연기도 소화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연출자가 바로 정다원 감독이다.
 
배우 이성경.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거 감독님이 보시면 안 되는데(웃음). 주변에서 말씀을 하시는 데 감독님이 아주 독특하신 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기를 잘하는 실력파가 아니라서 걱정도 많이 했죠. 그런데 의외로 현장에서 너무 편안하게 대해주셨어요. 진짜 친한 사람과 작업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죠. 배우로서 배우의 고충을 이해하는 분 같았어요. 이번 작품 잘되던 아니던 감독님 다음 작품에서 불러주시면 꼭 다시 만나 뵙고 싶어요.”
 
올해 데뷔 6년 차인 이성경이다. 사실 배우로서 가장 고민이 될 시기가 최근 찾아왔었다고. 배우로서 후배로서 또 파트너로 현장에서 자신의 존재감에 생각이 많아졌던 시기였단다. 그런 고민의 시기에 걸캅스는 이성경에게 일종의 힐링이 됐던 작품이다. 선배들에게 많은 조언도 받았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부분까지 깨우치게 됐단다.
 
배우 이성경. 사진/CJ엔터테인먼트
 
카메오로 출연하신 성동일 선배님이 현장에선 너의 영화다. 절대 약해지면 안된다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정말 잊혀지지 않는 조언이에요. 미란 언니도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너무 고마운 선배님이에요. 최근 영화 가버너움을 보고도 많은 걸 배웠어요. 너무 긴 여운이 남더라고요. 저런 연기 저런 존재감. ‘걸캅스도 재미있게 볼 영화이지만 관객들에게 어떤 여운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10년 차가 됐을 때 그래도 꽤 다양한 작품을 경험해 본 배우가 돼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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