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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26화)빈곤과 여성
“사람으로 시집간 것이 아니라 일꾼으로 시집갔다”
2019-05-20 06:00:00 2019-05-20 06:00:00
지난 1월10일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 ‘농촌 총각 국제결혼 지원금(매매혼 장려금) 세금 지원 폐지하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중개업체들을 통해 동남아에서 여자를 사 오는 ‘매매혼’을 각 지자체들이 지원금까지 줘가며 장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청원은 세금으로 매매혼을 지원하는 것이 도덕적·법적으로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지원 대상도 농촌 남성들로 국한해 농촌 여성들이 배제됨으로써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2월9일 마감된 이 청원은 참여 인원의 수가 3만6930명이어서 청와대의 답변을 듣지는 못했지만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어느 소수민족 여성의 결혼 이야기
 
중국과 국경을 접한 베트남 북서부 고산 지대 라오까이성의 사파(Sa Pa)는 현재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트레킹 코스로 선호되는 지역들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수려한 산수와 그 속에 넓게 펼쳐진 계단식 논―남해군의 다랑논을 아는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지만―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다른 한편, 이 지역의 여러 마을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주민들과의 조우가 매력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이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그들의 삶의 일상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 트레킹 가이드로 일하거나 손가방 같은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여성들, 놀다가도 관광객을 보면 뛰어와 엄마가 만든 팔찌를 파는 아이들의 모습이 외국인 여행자들의 뇌리 속에 피상적으로 남는 정도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예쁜 치마(전통 의상)를 꺼내 입은 몽족 소녀들(사파 따반마을). 사진/필자 제공
 
필자가 인터뷰를 한 소수민족 몽족(중국에서 묘족으로 불리는) 여성 A씨(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한다) 역시, 남편이 논에서 일하거나 축사를 짓거나 오토바이로 관광객을 태워 나르는 동안, 일주일에 두 번 트레킹 안내와 홈스테이 일을 한다. 베트남의 빈곤층보다 더 가난에 시달리는 이 소수민족 주민들의 대부분은 고등학교 학비를 댈 수 없어 중졸에 머물고, 식비는 그들의 삶에서 큰 걱정을 차지한다. 이런 환경에서 한 몽족 여인이 들려 준 그녀의 결혼 과정은 전통적인 매매혼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재 만 27세인 A씨(1992년 생)는 이웃마을 출신인 세 살 위 청년 B씨(1989년 생)를 새해 축제에서 만났다. 여러 마을의 청춘 남녀들은 보통 새해 축제에서 만나 서로의 배필을 다른 마을 사람으로 고른다. A씨와 B씨가 결혼하기로 했을 때 신랑 B씨의 부모는 신부 A씨의 부모에게 1500만동(약 75만원)과 100킬로그램의 콩, 20킬로그램의 닭, 10킬로그램의 생선, 20리터의 술을 지불했다. A씨는 평균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고 시집을 간 것이라 했다. 콩·닭·생선·술 같은 품목 외에 보통 2000만동(약 100만원)에서 4000만동(약 200만원), 아주 많게는 6000만동(약 300만원)까지 신부 집에 지불하는데, A씨의 경우 남편의 집이 가난하기도 했거니와, A씨가 그들 기준에서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탓에 금액이 낮아진 이유도 있다. 여자는 보통 15세부터 시작해 17~19세 사이에 결혼을 하고 남자도 19~20세쯤 결혼하는데, A씨는 만 20세, B씨는 만 23세에 결혼했으니 많이 늦은 셈이다.
 
혼인을 한 부부는 신부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신랑 집에 와 3년간 남편의 부모에게 진지를 해 올려 봉양한 후 독립하게 된다. 3년이 지나도 독립하지 않고 평생 부모를 모셔야 하는 자식은 막내아들 부부이다. 신랑의 부모가(부모가 없을 경우 신랑의 형제자매가) 신부의 부모에게 돈과 곡식, 가축 등을 지불하는 것은 여성의 노동력을 자기 집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이다. 이 결혼에 매매혼의 성격이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A씨와 B씨가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섯 살과 만 세 살 반인 두 자녀를 키우며 매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A씨의 가난한 친정 부모는 이미 세 딸 이후에 태어난 외동아들을 다른 집에 돈을 받고 보냈다. 그들은 세 딸이 결혼할 때 받은 돈으로 노후를 유지하는 대신, 아들 부부의 봉양은―새 부모에게 돈을 갚지 않는 한―영영 받지 못할 것이다.
 
사파 트레킹 가이드로 일하는 소수민족 몽족 여인들. 사진/필자 제공
 
민며느리제와 서옥제
고대 풍속에서 매매혼은 흔히 발견되었고 아직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 구형으로 혹은 신형 변종으로 지속되고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3세기 말 어환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위략>을 인용해 동옥저의 혼인 풍속인 ‘민며느리제’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옥저에서는 여자의 나이가 열 살이 되기 전 혼인을 약속하고 며느리로 삼을 집에서 장성하도록 키운다. 여자가 성인이 되면 친정으로 돌려보낸 후 친정집에서 요구하는 돈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가난한 집 부모가 입 하나 덜기 위해 어린 딸의 노동력을 밥과 맞바꾸는 혼인은 저 일제 강점기 시골 마을에서도 일어났다. 징용, 징병, 정신대 모집 등 전시 체제 하의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조혼이 성행하고 어린 소녀가 몇 십 년씩 차이 나는 장년의 남편에게 팔려가기도 하던 때였다.
 
고두밥 쪄 마당 가득히 널어놓은 날
부디 너 시집가지 마라
화순아
하늘에는 잠자리떼 신명
땅에는 곡식 신명
붉은 고추 지붕에서 신명
아래뜸 하루 내내 신명
굴뚝에서 연기 그치지 않는 화순이네 집
열세살 화순이 숙성하여
열여섯 화순이
부디 너 시집가지 마라
세상에 시집갈 데 없어
민며느리로 시집가느냐
네가 울며 시집가는 날
네 가마 막아서리라
네 가마 내려
너 업고 달아나리라
< … >
 
너만 보면 안될 일도 될 듯한 화순아
네가 지곡리 황가네 민며느리라니
너 가지 못한다
너 가지 못한다
 
< … >
(‘화순이’, 5권)
 
한편, 역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전하는 고구려의 서옥제는 사위가 처가로 가 일정 기간 동안 사는 방식이다. 양가 사이에 혼인 말이 정해지면 여자의 집에서 본채 뒤에 작은 별채인 ‘서옥’(壻屋), 즉 ‘사위가 사는 집’을 짓는다. 해가 저물 무렵 신랑이 신부의 집 문 밖에서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무릎 꿇고 절하면서 신부와 동숙하기를 두세 번 청하면 신부의 부모가 서옥에서 잘 것을 허락한다. 신랑은 돈과 비단을 서옥 옆에 쌓아 두고 서옥에서 아내와 살다가 아들이 장성하면 처자식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려의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도 여자 집에서 혼례를 치루고 여자 집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서옥제와 유사하지만, 서옥을 따로 짓지 않았고 이후의 거주지가 고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옥제와 구별된다. 민며느리제가 어린 여성의 노동력을 사 가는 방식이었다면, 서옥제나 서류부가혼은―물론 처음에 재물을 지불하지만―남성이 처가에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여러 해 동안 처가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었으므로 여자 쪽 집안의 재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될 때 가능했던 혼인 방식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고려 시대의 가난한 집 처녀들이 결혼을 못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합동 국제결혼을 올리는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매매혼’의 오명을 쓴 국제결혼의 현실
베트남이나 중국 소수민족들의 풍습에서 아직 조혼을 볼 수 있고 매매혼적인 흔적도 남아 있지만, 그 바탕에는 또래 젊은이들 간의 자유로운 연애와 문화적·언어적 소통이 있다. 이에 비해, 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농촌 총각들의 배필로 입국하는 외국인 신부들은 1990년대 중국의 조선족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로 확장되었고,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베트남인들이 많아진 추세이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20년씩 나는 중·장년의 한국 남편과 그의 가족은 신부에게 가부장적 순종을 강요하고, 동남아시아의 젊은 여성들은 가난한 친정에 정기적으로 송금해 줄 돈에 대한 기대와 외국에서의 삶이라는 환상에 젖어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이곳으로 시집을 온다. 1000~1500만원의 중개료를 주고 신부를 사오는 매매혼이 그 실체인 이상, 이런 국제결혼은 종종 가정폭력으로 파국을 맞는다. 남편은 아내가 도망 갈까봐 전전긍긍하고 아내는 비인간적 처우 속에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 또한 확산된다.
 
매매혼 국제결혼의 문제점이 비판되면서 최근 몇 해 동안 이런 결혼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지자체들의 ‘농촌 총각 국제결혼 비용 지원’은 여전하다. 예를 들어, 몇몇 조건이 충족될 경우 괴산군은 500만원을, 양평군은 1000만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밖에도 각 도의 많은 시·군들이 이런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금으로 매매혼이 되어버린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을 돕는 것이 궁극적 해결책이겠는가. 지원을 하더라도 며칠 만에 상품 고르듯이 여성들을 골라 오는 일을 지원할 일은 아니다. 물론 잘 사는 커플들도 없지는 않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숙고할 일이다.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한 매매혼이 낳은 피해 사례는 결혼이주여성들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중개업체들은 종종 동남아 여성을 상품화하고 순종을 강조하는 문구를 사용해 농촌 남성들을 유혹하는 한편, 해외 여성들에게는 한국 남성의 재력을 과대 포장해 유혹한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결혼했다 할지라도 아내는 아내일 뿐 예전처럼 종이 아니다. 돈으로 사 온 신부라고 해서 옛날 사람처럼 일만 해 주고 자식만 낳아 주는 기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쇠정지밭 / 바우배기밭 / 갈메밭
잿정지밭 / 성문 밖 / 방앗달밭 / 방죽밭
 
일년 내내 일이었다
 
첫딸 치순이는 살림밑천
일밑천
 
새벽부터 물 긷기
밥하기 / 방아 찧기
쇠죽 쑤기 / 들밥 나르기
마당 쓸기 / 재 퍼내기
남새밭 벌레 잡기 / 빨래하기
비 오는 날 가마니 치기
밤에는 / 호롱불에 헌옷 깁기
감기 들 겨를 없고
별 볼 어둠도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일꾼으로 태어났다
 
가슴속에는
한 가지 소원 있다
일 많은 집으로
죽어도 시집 안 가는 것
 
그러다가 선보아
시집간 데가
어쩌자고 방앗간집
 
심부름하는 아이 하나와
아침부터
먼지구덩이 방앗간에서
쌀 되어 삯 받고
밤에는
수박밭 참외밭 지켰다
 
사람으로 시집간 것이 아니라
일꾼으로 시집갔다
< … >
(‘치순이’, 17권)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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