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부시의 진심과 황교안의 본심
입력 : 2019-05-24 06:00:00 수정 : 2019-05-24 11:08:09
최한영 정치부 기자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특히 냉전종식 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군림해온 미국의 정책방향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였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좋든 싫든 미국과의 관계를 좋게 가져가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사실 악연에 가까웠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주위 사람들이 펴낸 자서전 '운명이다' 곳곳에 이를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등장한다. "이라크 파병 요청은 미국(부시 대통령)이 보낸, 고약하지만 수령을 거절하기 어려운 취임 축하선물이었다." "미 행정부는 매번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장했다. 나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 효과적이니 채찍보다는 당근을 사용하자고 미 행정부를 설득했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궁합을 맞춰 '햇볕정책'을 추진한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부러웠을듯 싶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상징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구축이 지상 과제였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에게 노 전 대통령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국정목표는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시 행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을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이라고 묘사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더 심한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다. 그만큼 노 전 대통령은 미국에 껄끄러운 존재였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부시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음을 밝히고 싶다"고 언급했다. 정치인의 수사가 일부 포함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나름의 애도를 표한 것이다. 23일 노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서는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모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목소리를 냈다"며 "물론 저희는 의견 차이는 갖고 있었지만 한미동맹 중요성의 가치를 우선하는 차이는 아니었다. (한미 정상은)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며 생전 고인의 노력을 기렸다.
 
같은 시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민생대장정'을 이유로 추도식에 불참했다. 한국당 측은 "마땅히 추도식에 참석해야 하나 민생투쟁대장정 일정으로 불가피하게 참석할 수 없게 됐다"며 몇몇 의원·원외위원장을 대표단으로 대신 보냈다. 황 대표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정치의 본령 중 하나가 '상호 존중'임에 비춰볼 때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나라 대통령도 온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할만큼 강원 철원 감시초소(GP) 철거현장 방문이 시급한 일이었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의 눈은 피하지 못한다.
 
김해=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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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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