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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엑시트’, 넘치는 활극의 쾌감과 묘미
재난 장르 전형성 탈피, 탈출 과정 포인트 관객 긴장감↑
인물 사연-민폐 캐릭터-재난 이유 배제…“탈출 묘미 ↑”
2019-07-19 00:00:00 2019-07-19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엑시트는 재난 영화다. 하지만 어딘지 빈약해 보인다. 여름 극장가는 제작사와 투자 배급사에겐 1년 중 가장 큰 시장이다. ‘고비용 고효율법칙이 가장 잘 들어 맞는 시즌이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성공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다. 하지만 엑시트는 그런 점에선 빈약한 지점이 많다. 우선 티켓 파워가 막강한 배우가 없다. 조정석-임윤아 투톱은 분명히 약하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아우라는 재난 영화 특유의 비장함과 자본 집중력이 돋보이는 물량 공세도 부족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미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장르와 콘셉트가 엇박자다. 위태롭다. 전형성에서 분명히 벗어났다. 문제는 엑시트가 이 예상 밖 지점을 의외로 영리하게 타고 달린단 점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와 장치가 명석하게 결합되고 밑밥으로 깔려 있다. 제목 그대로 익숙한 도심 탈출기(엑시트: EXIT)는 활극의 쾌감과 묘미를 양념처럼 살려 준다.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취준생이다. 그저 백수다.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 활동을 했던 취미 생활을 살려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놀이터에서 철봉에 매달려 체력을 단련한다. 멋들어졌지만 슬픈 청춘이다. 화려한 철봉 퍼포먼스에 조카는 삼촌을 동네 바보취급한다. 취업 전선에서 밀려난 2030세대 자화상이다. 현실 사회에서 용남은 그저 루저일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달픈 용남이다. 가족들 눈치에 드센 누나(김지영)의 닥달도 한 몫 거든다. 그런 용남 앞에 과거 대학 시절 첫 사랑이던 의주(임윤아)가 나타난다. 의주는 용남의 어머니 현옥(고두심)의 칠순 잔치가 열리는 뷔페 식당에서 부점장으로 근무한다. 대학 시절 의주에게 고백했다가 한 방에 걷어차인 용남이다. 하지만 의주도 지금은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생과 다를 바 없는 일자리에 점장의 추근댐은 날이 갈수록 수위를 더한다. 현실의 용남과 의주 모두 웃픈 청춘일 뿐이다.
 
어색한 재회 속에서 예전의 감정을 끌어 올리던 중이다. 건물 밖에서 이상한 연기가 피어 오른다. 가스 테러가 일어났다. 유독 가스가 도심에 퍼지면서 사람들이 죽는다. 용남의 가족과 의주는 가스를 피해 옥상으로 대피를 한다. 하지만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구가 잠겼다. 고민 하던 용남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다. 산악부 시절 실력과 평소 갈고 닦은 철봉 퍼포먼스를 앞세워 맨손으로 건물 벽을 타고 오른다. 이제 본격적인 엑시트가 시작된다.
 
영화 '엑시트'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엑시트는 재난 영화다. 하지만 엑시트는 재난이 주인공이 아니다. 용남과 의주 두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제목 자체가 주인공이다. 유독 가스로 가득 찬 도심을 탈출하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탈출 행위 자체가 스토리의 주요 동력이기에 레벨을 구분해 포지셔닝을 배치했다. 일종의 스테이지 개념으로 구성된 두 사람의 탈출 과정은 생중계 형식으로 온 국민에게 비춰진다. 관객과 영화 속 두 사람의 탈출 과정을 시청하는 사람들 모두가 게임에 참가한 유저들이 된다. 재난 자체가 게임으로 비하되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의도와 계산이 깔려 있진 않다. 재난이란 소재 자체 무게감을 덜고 장르적 특색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리수를 배제하기 위한 선택으로 다가온다.
 
재난자체의 소비성에만 기댄 설정은 더욱 아니다. 현실 사회 속 취준생 백수 용남과 비정규직 부점장 의주의 고달픈 청년 현실은 재난 속 지금의 현실과 결합돼 이들의 진짜 능력을 끌어내는 아이러니한 동력으로 작용된다. 현실 속 루저로 낙인 찍힌 두 청춘의 재난 탈출 과정은 그 자체로 성장이다. 시종일관 올곧게 뻗은 도심 속 빌딩 숲 옥상을 내 달리는 두 사람의 동선 설정 자체가 이런 과정의 비유를 위한 감독의 계산으로 다가온다.
 
영화 '엑시트'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엑시트는 각 단계마다 누군가를 죽여서 사연을 덧입히고 관객들의 감정을 끓게 하는 장치가 배제됐다. 뒷목 잡게 만드는 악인도 없다. 목을 턱턱 막히게 하는 민폐 캐릭터도 없다. 재난의 이유와 과정 그리고 인물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장면도 없다. ‘엑시트는 그저 시종일관 달린다. 시종일관 탈출해야 한다. 생존 자체에만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기발하다 못해 깜찍할 정도의 아이디어도 속출한다. 쓰레기봉투 분필 고무장갑 아령 등을 이용한 탈출 과정은 재미를 더한다. 그 재미 속에서 슈퍼맨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만 적당히 찌질해서 온전히 매력적인 용남과 의주의 발랄함이 꽤 그럴듯하다.
 
겉만 보고 판단해선 절대 안 된다. 사람은 물론이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엑시트가 그걸 오롯이 증명한다. 오는 31일 개봉.
 
 
영화 '엑시트'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P.S 이승환의 '슈퍼 히어로'가 영화 마지막 울려 퍼진다. "너희들 모두는 특별해 이 세상에 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어 이 순간부터 넌 세상의 중심이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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