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시 읽는 강제동원 판결문 - 주권을 넘어서는 인권
입력 : 2019-08-22 06:00:00 수정 : 2019-08-22 06:00:00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 많은 원인 중 가장 감정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는 역시 한일 과거사문제다.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문제가 현재 한일관계 악화의 배경이다.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꼴이다.
 
문제가 된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을 다시 읽었다. 판결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판결은 대법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다수 대법관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했지만 소수 대법관들은 이에 반대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이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치밀한 논리전개와 수준 높은 논쟁이 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대법관들이 단순히 민족주의나 반일주의에 물들어 판결을 선고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 판결에서 대법관들이 전원 일치를 본 것은 일본 법원의 결정이 한국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위자료청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일본 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때 일본 법원이 동원한 논리는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것이었다. 일본은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일본의 이 판결이 대한민국에서는 효력이 없다고 보았다.
 
대법원의 입장은 지극히 정당하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법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만일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법적인 것으로 보면 우리는 3.1운동과 임시정부,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부정하게 되고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이 명시되어 있는 헌법도 부정하게 된다. 헌법을 만든 우리 국민의 주권도 부인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도 부정하게 된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관점이다. 대법원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일본에서 이미 일본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일본의 재판도 일본 주권의 표현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일본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이러한 결론은 형식적으로는 인정해야 한다. 주권은 출처나 내용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제징용 청구권 판결을 둘러싼 대립은 주권과 주권의 대립이라는 결론이 된다. 주권과 주권이 대립하면 양보하거나 타협하는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형식적으로 제3의 기관에서 중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적으로 주권을 뛰어넘는 가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중재보다는 높은 가치를 바탕으로 한 해결이 좋은 방안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바로 인권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해결방안이다.
 
인권의 가치로 문제를 해결할 때 일본도 승복할 수 있고 다른 나라도 설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대법관 김선수와 김재형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 채 온갖 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인 원고들은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강제노동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존엄과 가치가 침해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의 인권이 침해되었으므로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도 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권과 인권이 서로 대립할 때 대부분은 주권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침해당한 경우에는 주권이 인권에 양보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법원판결은 주권의 표현이므로 형식적으로는 대등하게 보인다. 하지만 경중의 차이가 있다. 과연 어느 쪽이 인권에 충실한 판결인지가 중요하다. 식민시대 조선인들의 존엄과 가치를 생각하고 이들의 인권을 우선하는 판결은 우리 대법원 판결임이 틀림없다. 보편적인 인권 가치라는 관점에 설 때 과거사문제는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다시 우리 대법원 판결을 읽기를 강호제현에게, 특히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바란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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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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