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청·백군에서 벗어나 스케이트를 타는 패러다임을 꿈꾼다
입력 : 2019-10-17 06:00:00 수정 : 2019-10-17 06: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을 개발도상국가 빈곤퇴치를 위한 좋은 연구사례로 꼽았다. 국정감사나 광장정치에서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뷔일란트, 1781)'을 연상시키는 검찰개혁·언론개혁·조국수호 등을 둘러싼 공방전으로 온 나라가 수렁에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차에 우리나라가 빈곤퇴치 모델이라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경제발전 모델에 대한 한국 특파원들의 질문에 "한국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별로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수상자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MIT 교수는 "기술과 교육에 대한 한국의 대규모 투자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사라진 지 오래니 "빈곤이 퇴치되었다"는 진단에 공감한다.
 
국가 전체의 부(國富)도 지표상으로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론이 분열되었음은 오로지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둘러싼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일까? 아니다. 검찰개혁이 쟁점이기는 하지만, 적폐청산이나 일자리 확대가 경제사회 발전의 요체이다. 좌우대립 내지 보수혁신의 공방은 경제·사회 분야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여야는 전범기업 배상청구나 지소미아와 같은 국제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했지만,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로 등과 같은 경제·사회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규제혁신이 속속 추진되고 있고, 약 13조원에 이르는 국책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계획이 발표됐지만 반대진영의 마음을 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국민의 약 25%가 지지정당이 무당층이고 여야는 이들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고자 자주 무리수를 두지만, 복수혈전을 펼치며 법무부장관을 바꾸고 날카로운 언사로 상대방의 폐부를 찌른다고 해서 무당층이 결집될 것 같지는 않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 불균형이 좁혀지며 적폐가 청산되고 사회안전망이 확대되는 등의 혁신이 완수되지 않고서는 무당층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
 
우리 경제·사회의 보다 큰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나 과제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위정자라면 모름지기 대증요법보다 원인요법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 병인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초고령화 시대 인구문제와 결혼·양육·교육의 곤란, 재래산업의 퇴조, 그리고 부동산을 둘러싼 정부와 시장의 실패다. 패러다임을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어렵다.
 
노인들이 생산이나 자원봉사 등을 통한 경제활동에서 멀어지면서 유효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유효수요가 줄어들면 경제는 활력이 떨어진다. 노인들은 ‘건강 100세’라는 구호 속에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남겨주기 위해 지갑을 닫는다. 자식들은 평생을 저축해도 모을 수 없는 집값으로 보금자리를 꾸밀 엄두를 못 낸다. 체면을 지켜야 하는 혼수와 결혼식, 신혼여행이 벅차다. 다세대가 동거할 수 없는 아파트에 사는 맞벌이 부부의 출산과 양육은 곤란 그 자체다.
 
먼저 인구감소를 지연시키고 유효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일자리는 재래산업에 더 많다. 역대 정부들은 재래 기술과 산업 및 시장에 소홀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할인액을 부담하는 지역화폐를 유통시키지만, 기본적인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미흡하다. 노인들이 은퇴하지 않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미래세대 청년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면 많은 자본과 고급 기술이 필요한 대기업형 첨단산업보다 중소기업형 재래산업이 유지돼야 한다.
 
청년들의 애로를 덜어줘야 한다. 비정규직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는 것으로 만사가 해결되지 않는다. 청년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일찍 창업하거나 취업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농림수산업 분야와 서비스 산업 분야에 일자리를 확대하고, 도시의 아파트보다 다세대 동거가 가능한 전원주택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지원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가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문화가 복원돼야 한다.
 
이런 정책들을 추진하자면 좌파나 우파의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보수와 진보의 노선 경쟁을 벗어나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좌우를 넘나들고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중용(中庸)의 기술이 필요하다. 중용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지만, 양쪽을 적당히 절충하려는 중도(中道)와 아주 다르다. 중용은 스케이트를 타는 것과 같다. 기득권층이 중용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노선이나 이데올로기 색채가 약한 무소속과 무당파들이 연대해 중용을 추진하고 변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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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창현

산업1부에서 ICT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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