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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그만' …"개인에 공매도 기회 보장해야"
"일본 사례 참고해 대주공급기관 설립 모색해야"
2019-11-22 01:00:00 2019-11-22 01:00:00
[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국내 증권시장에서 여전히 외국인과 기관이 개인에 비해 월등한 비율로 공매도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매도에서 사실상 제외된 개인은 공매도 폐지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지만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치지 않고 외면하는 것은 시장 전체의 질서를 해칠 수 있어 개인에게도 공매도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과 개인, 외국인의 공매도 비중은 41.0%, 0.8%, 58.2% 였다. 코스닥시장도 각각 23.9%, 1.8%, 74.3%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올해 3분기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거래 비중을 살펴보면 개인은 1%대에 불과하지만 기관은 30~40%대, 외국인은 최대 70%까지 차지하고 있다. 개인은 여전히 공매도 시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서 있는 것이다.
 
 
공매도에 관한 논의는 외국인과 기관에 비해 개인에게 제한된 접근권 문제와, 불법공매도에 대한 제재강화로 압축된다. 국내에서 개인에게 공매도가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을 막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 개인 공매도 활성화에 뒷짐진 당국
 
금융당국은 개인투자자의 진입 문제보다는 무차입 공매도 등 공매도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금융위는 "공매도가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고 적정한 가격 형성에 도움을 준다"며 공매도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일부 부작용이 있지만 폐지보다는 제재 강화가 맞다는 것이다. 때 투자 피해 같은 잡음을 두려워하는 것"같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공매도에 대한 소신을 밝힌 적이 없지만 최종구 전 금융위장은 지난 7월 간담회에서 "개인투자자에게 기회를 좀더 주고 차입인지 무차입인지 확인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국 내에서도 공매도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국감을 통해 "개인적인 소신은 소액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국도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이 보장돼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만, 딱히 이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에게 공매도 접근 수단을 열어줬을 때의 잡음을 피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늘어나는 개인 공매도 수단…한계도 '명확'
 
당국이 미적거리는 사이 시장에서는 개인 공매도 수단이 등장하고 있다. 현재 개인투자자들이 현실적으로 주식을 차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는 신용거래 대주가 있다. 한국증권금융에 따르면 11월19일 현재 대주 가능 종목은 328개에 불과하다. 키움증권 등이 신용거래 대주를 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거래 종목과 수량 등에 제한이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기관도 대주를 쉽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대주는 신용도와 종목 때문에 더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공매도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지난 8월에는 개인 공매도 플랫폼도 등장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 투자자들끼리 직접 주식을 대여하고 차입할 수 있는 신한금융투자의 P2P주식대차지원 서비스다.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되며 개인 공매도 지원 시스템으로 첫발을 내딛었지만, 현재까지 이렇다할 실적은 발표된 바 없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플랫폼 도입 3개월이 지난 지금 30여개 종목이 거래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대형주 뿐 아니라 중소형주도 거래되고 있으며 투자자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여러 증권사가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CFD(Contract For Difference, 차액결제거래) 서비스도 개인의 공매도 수단으로 거론된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교보증권과 키움증권, DB금융투자의 일평균 CFD 거래액은 339억원, 총잔고는 2520억원에 이른다.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입가격과 청산가격의 차액만 결제하면 되는 장외파생상품의 일종이지만 매도 주문으로 공매도가 가능한 구조다. 다만 이 상품은 전문투자자만 거래할 수 있다. 외국 프라임브로커가 보유한 종목이 대부분 코스피 대형종목에 한정돼 있어 개인투자자가 관심이 많은 코스닥 종목 공매도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개인대상 대주공급기관 설립 모델 거론
 
장기적으로 개인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대주 공급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본 주식시장은 개인투자자들의 신용거래대주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대주재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구'가 있다. 이러한 모범 모델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일본증권금융회사(JSF, Japan Securities Finance)다. 일본증권금융이라는 회사가 자체 신용으로 신용매도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 서비스로 제공하는 형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가 상승을 예상하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신용거래융자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이와 대칭적인 성격을 가진 신용거래대주는 활용도가 낮아 신용거래제도의 균형을 갖출 수 있는 제도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일본에서는 신용거래융자의 담보를 신용거래대주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식으로 신용거래융자와 신용거래대주가 서로의 재원을 공급하는 모델이 설계·운영되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개인이 공매도를 이용할 수 있는 물량과 종목이 많아지고 참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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