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88서울올림픽과 코로나 진단키트 외교
입력 : 2020-04-10 06:00:00 수정 : 2020-04-10 06:00:00
88서울올림픽은 한국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고 위상을 드높이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올림픽을 치른 지 1년 뒤인 1989년 우리와는 아직 수교를 하지 않은 적성 공산국가인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본부 주관으로 그해 8월 하얼빈에서 열린 ‘1차 보건의료에 관한 회원국 전문가 및 언론인 세미나’에 초청받아 보건복지부 공보 담당 사무관, 동료 출입기자 한 명과 함께 베이징을 거쳐 하얼빈으로 갔다. 중국 비자를 받기 위해 서태평양지역본부가 있는 마닐라에서 비자와 여행비 등을 받은 뒤 홍콩을 거쳐 중국에 입국했다. 그 당시 중국 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얼빈에서 짬을 내어 묵고 있던 숙소 밖을 나갔다. 마침 숙소 바로 앞 길거리에 수박을 쌓아두고 팔고 있던 중국인 노점상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한 판이 끝난 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하던 필자에게 무어라고 말하며 장기를 두자고 했다. 한데 중국 장기는 한국 장기와 장기 말이 가는 길이 달랐다. 결국 장기는 두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말을 전혀 못하고 그와 영어도 통하지 않아 필담을 나누었다. 수첩에다 한자로 한국인이라고 적었다. 그는 대뜸 ‘난차오셴(남조선)’이라고 말한 뒤 서울올림픽이라는 말과 함께 엄지 척을 했다. 올림픽 경기를 텔레비전 중계로 본 모양이다. 당시 중국은 올림픽을 치른 적이 없으니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는 수박 한 덩이를 주려 했다. 손을 저으며 한 조각만 달라고 손짓으로 이야기하니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어 그 자리에서 맛있게 먹었다. 올림픽과 같은 지구촌 축제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 중국의 노점상도 한국인을 환대하게 만든 것이다.
 
코로나19는 오는 7월 도쿄에서 열리기로 돼있던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마저 연기하게 만드는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전 세계가 뒤죽박죽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은 진단키트로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신속하고 정확한 코로나19 진단 실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한국 진단키트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진단키트를 요청한 나라가 120개국이 넘는다고 한다. 어디부터 먼저 줄지 정부가 고민해야 할 정도다. 즐거운 비명이라고나 할까. 진단키트가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등공신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는 한국이 고안해내 전 세계에 무료로 퍼지고 있는 승차(드라이브 스루) 검사라는 창의적 발상과 함께 한국의 의료 기술력을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박히게 만들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한국의 진단키트에 확실한 인증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프리가 국가들에 대한 한국산 진단키트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6일 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진단키트 등 방역 물품 현물 지원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다. 또 “5월에 화상으로 개최될 세계보건총회(WHA)에서 아시아 대표로 기조발언을 해 달라”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한국의 위상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는 한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에게 위기다. 하지만 이 위기는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출발선에 서 있다. 감염병 공포에 선진국 사이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가로채기와 같은 비열한 방식의 마스크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 연대가 아니라 각자도생의 꼼수가 횡행하고 있다.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제 연대가 필수라는 좋은 말도 이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 일본 등과는 달리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앞세워 국제 연대 모범국으로 우뚝 서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경제는 상당 기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짙다. 못 살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프리카 국가에 진단키트 등 방역 물품을 현물 지원할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운 데도 이를 지원하는 것은 여유가 있을 때 지원하는 것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가치 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 기술력에다 국가의 이런 품격까지 더해진다면 세계인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세계 감염병 방역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기록될 수 있다. 정부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프리카 국가부터 방역물품을 지원하되 가장 필요한 곳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안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데 힘을 쓰고 밖으로는 진단키트 외교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   
 
 
안종주 단국대 초빙교수·보건학 박사(jjahn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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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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