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비바리움’, 실험과 경험 그리고 체험이 만든 ‘괴이함’
관찰이나 연구 목적으로 만든 공간 ‘비바리움’, 인간 실험 위한 ‘욘더’
뻐꾸기 생존 생태계 vs 인간 생존 문제…“그럼 누가 주체인가” 질문
입력 : 2020-07-15 00:00:00 수정 : 2020-07-15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비바리움은 실험이다.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했는지 모른다.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지만 비바리움은 앞선 모든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진 않는다. 그래서 더 기괴하고 또 공포스럽다. 사실상 이 영화 모든 감정은 초월적이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런 지점은 삶과 맞닿아 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삶이다. 잠시 후 문을 나설 것이다. 하지만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진 절대 알 수 없다. 이 영화의 실험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선택에 대한 문제다.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모르는 문, 그 문 너머로 나아갈 것 인가. 말 것 인가.
 
 
 
이 선택의 문제는 뻐꾸기 둥지를 통해 비유된다.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뿜지 않는다.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둥지 진짜 주인 새끼를 밖으로 밀어 내 죽인다. 뻐꾸기 새끼는 둥지 주인 새의 새끼 노릇을 한다. 주인 새는 자신보다 몇 배나 되는 뻐꾸기 새끼를 재 새끼인양 열심히 키운다. 여기서 드는 의문. 그럼 주인 새가 뻐꾸기 새끼를 끼우는 걸까. 아니면 뻐꾸기 새끼가 주인 새를 자신의 어미로 길들이는 걸까. ‘비바리움은 이 황당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선택을 요구한다. 주인 새 둥지는 이 세상이고, 또 영화 속 등장하는 욘더란 하우스 타운를 의미한다. 모두가 똑 같은 공간에서 똑 같은 삶을 살게 되기를 강요하는 욘더’. 그 곳은 들어갈 순 있지만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다. 우리는 삶을 원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 삶은 태어났기에 사는 것이지만 빠져 나오는 것은 죽음뿐이다. 살아서 들어가고, 죽어서 나올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욘더, 우리 삶이고 인생이다.
 
학교 선생님 젬마, 그리고 그의 연인이자 원예사 톰. 두 사람은 함께 살 집을 구한다.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이자 고충이다. 어렵사리 찾아간 곳. 기묘한 느낌의 중개인 마틴. 그는 두 사람을 도시 외곽 신개념 타운하우스 욘더로 이끈다. 이끄는 게 아니라 이끌어 가려고 한다. 선택과 욕망, 현실과 미래의 고민이 잠시 충돌하지만 두 사람은 무엇엔가 홀린 듯 그곳으로 들어간다.
 
 
 
수백 혹은 수천 가구가 모여 있는 타운하우스 욘더’. 모두가 똑 같은 모양이다. 똑 같은 색깔이다. 그 곳에서 두 사람은 9호 집을 소개 받는다. 안락하고 살기 좋은 느낌이다. 다소 불쾌한 느낌을 가져다 주지만 젬마와 톰은 집이 필요하다. 선택을 위해 고민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별일은 아니다. 마틴이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가 크다. 불쾌했던 느낌 그대로다. 두 사람은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 이제 떠나면 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차는 돌고 또 돌고 또 돌아도 그 자리다. 언제나 두 사람을 9호 집으로 안내한다. 두 사람은 이 공간에 갇혔다. ‘욘더는 뻐꾸기 둥지다. 젬마와 톰은 뻐꾸기 새끼가 될지 아니면 둥지 주인새의 새끼가 될지, 그것도 아니면 둥지의 주인새가 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의문의 상자가 9호 집 앞으로 배달된다. ‘아이를 키우면 나갈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상자에는 살아 있는 아기가 담겨 있다. 두 사람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이를 키우며 9호 집에 머물기 시작한다. 적당한 시기에 배달되는 음식물들. 적당한 시기에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지는 쓰레기들. 모든 게 안락하고, 모든 게 완벽한 공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점점 더 선택의 폭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와 함께.
 
 
 
아이는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한다. 뻐꾸기 새끼가 주인새 보다 몇 배는 크고 빨리 자라나는 것처럼. 젬마와 톰은 자신도 모르게 누구의 새끼인지도 모를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주인새가 됐다. 이 아이, 하루가 다르게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이상한 반응과 괴상한 행동만 일삼는다. 거대한 욘더에는 젬마 톰 그리고 누군지 모를 이 아이. 세 사람만 남아있다. 아니 두 사람이고, 하나의 그것일 수도 있다.
 
비바리움은 관찰이나 연구 목적으로 동물과 식물을 가둬 사육하는 공간을 말한다. 이 공간의 목적성은 명확하다. 관찰이나 연구 주도하는 주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게 흘러가야 한다. 젬마와 톰이 시간이 지나면서 불화를 겪고,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두고 다른 시각과 다른 생각 다른 판단을 겪으며 느끼는 모든 과정이 드러날수록 이런 점은 명확해진다. 젬마와 톰은 욘더에 갇혔다. 하지만 이제 갇힌 공간에 빠져 나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아이를 키워야 한다. 두 사람의 목적이 변했다. 그리고 욘더주체가 만들고 이끌어 가는 목적이 변한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욘더주체는 두 사람에게 원했던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 선택이란 문제를 통해 인간의 목적이 변화돼 가는 과정을 바라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집을 원했다. 집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제 집에서 빠져 나오고 싶다. 거길 빠져 나오기 위해선 아이를 키워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진짜 아빠와 엄마가 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젠 집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집을 원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공간에서 빠져 나가야 하는 것인지. 젬마와 톰은 혼란을 뛰어넘어 이제 목적 자체가 불분명해진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을 선택해 이런 잔인한 실험을 하는지는 모른다. 물론 영화 마지막 누구에 대한 힌트는 어느 정도 드러난다. 하지만 사실 이 영화 실체는 해답이 아니다. 누가 왜 무엇을 위해서. 그것도 중요한 지점은 아니다. 상황 속에 빠진 인간의 선택은 과연 정당한 동기를 이끌어 내느냐에 대한 의문과 생각을 만들어 낸다. ‘욘더를 탈출하기 위해 끊임 없이 집착한 톰의 그것욘더에 갇힌 젬마가 탈출과 모성의 충돌 속에서 선택하고 바라본 충격적인 실체는 기이하고 기괴하단 표현으론 결코 충분하지 않다.
 
 
 
비바리움은 실험인 동시에 경험이고, 경험인 동시에 체험이다. 혹시 모른다. 당신이 사는 지금 이 세계가 욘더이고, 누군가의 선택으로 당신 선택이 조종당하고 있을지도. 정말 모르는 것이다. 7월 16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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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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