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 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어떤 이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추모앨범 '장필순reminds조동진'을 낸 가수 장필순.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간결한 피아노 타건과 안개처럼 속삭이며 다가오는 목소리. 이 자연의 소리와 닿은 듯한 공명의 숲에는 여전히 이름 세 글자가 반짝이고 있다.
한국 포크계의 대부 고 조동진(1947~2017). 한국대중음악사에 획을 그은 음유시인들의 공동체 ‘하나음악(이후 2000년대 푸른곰팡이, 현재 최소우주가 그 명맥 계승을 표방)’ 수장.
최근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은 조동진의 생전 작품들을 재조명하는 앨범 ‘장필순 Reminds 조동진’을 내놨다. 조동진의 동생이자 그룹 어떤날 출신이며, 오랜 동반자인 조동익과 함께.
1일 서면으로 만난 장필순은 “작업의 전체적인 방향은 단순함이었다”며 “조동진 선배님 곡의 멜로디와 노랫말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편곡과 창법을 썼다”고 설명했다.
“소박한 멜로디와 노랫말 속 빈 공간에 청자들이 들어와 함께 공감하는, 그런 바람을 담았습니다.”
추모앨범 '장필순reminds조동진'을 낸 가수 장필순.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총 10곡이 수록된 앨범은 간략하고 정제된 소리로만 조동진을 불러낸다. 리얼 악기 중심의 ‘미니멀 악곡’과 공중에서 발화하듯 사라지는 장필순의 보컬이 전반에 깔려있다.
“(녹음 시) 느낌을 끊고 싶지 않아 곡을 한 번에 부르곤 합니다. 음정이나 박자보단 음악의 흐름과 느낌에 무게를 두며. 그렇게 하다보면 가끔 머리가 ‘핑그르르’ 돌기도 하지만요.”
이를 테면 수록곡 ‘제비꽃’에서는 오카리나 소리가 주가 되는 밝은 음색들을 걷어내고, 피아노의 타건 만으로 고요의 숲을 조성한다. 기교 없되 안개처럼 자욱한 장필순의 목소리는 조동진 가사가 담고 있는 삶의 철학, 본질에 더 가깝게 하는 효과를 낸다.
‘좋은 노래, 좋은 소리란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는 조동진의 오랜 지론은 하나음악을 관통해온 철학적 줄기였다. 가사에 집중하다보면 맑고 개운해지는 느낌이 있다. 이번 앨범에 담고자 했던 조동진이라는 세계, 하나음악의 음악정신이라면 무엇이었을까.
“‘좋은 마음’이란 결국 ‘선함’과도 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칠고 험한 세상에 가끔은 바보 같을지언정, 위로가 되는 그런 음악이 선배님께서 말씀한 ‘좋은 음악’ 아니었을까 싶어요.”
추모앨범 '장필순reminds조동진'을 낸 가수 장필순.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22살 때 그는 ‘슬픔이 너의 가슴에’를 들으며 자주 울었다고 했다. “이 노래는 힘들 때 언제나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곡입니다. 듣는 분들에게 편하게 다가가 위로를 줄 수 있는 노래라 생각합니다.”
‘슬픔이 (중략) 갑자기 찾아와 견디기 어려울 때/ 잠시 이 노래를 불러보라’ 속삭이는 곡은 슬픔과 외로움을 초탈한, 관조자의 위로처럼 들린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고인이 주변에 미리 보낸 메시지이기라도 하듯.
고인은 이미 과거에 미래를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제가 아는 조동진 선배님은 그저 기타와 함께 항상 무언가를 공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무엇을 여쭤봐도 답을 주셨고 거절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저희의 커다란 나무였고 위로였죠.”
그는 하나음악 시절부터 “음악을 음악 자체로 바라보는 시선을 배울 수 있었다”며 “제 음악을 제 스스로 지켜갈 수 있는 힘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또 “노랫 속에 이념을 담지 않아도 조동진 선배의 곡들은 한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 시대를 고뇌하는 같은 세대를 노래하곤 했던 것 같다”며 “가만 듣다보면 부르짖거나 주장하려는 노랫말은 없다. 그저 무언가를 어딘가를 응시하고 계셨던 것 같다”고 했다.
다시 부름으로써 새롭게 다가온 곡들로는 ‘먼 길 돌아오며’를 꼽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고 난 뒤 듣고 부르니 더 깊이 있게 와 닿는 노래였습니다. 특히 노랫말 중 ‘저 하늘 끝 저 바닷속 누가 다 말하리오/ 지나간 일 다가올 일 누가 다 말하리오.’ 부분. 무언가 어제와 내일의 의미보다 항상 하시던 말씀.. ‘지금에 충실하자’라 하신 게 귓가에 맴돌아요.”
추모앨범 '장필순reminds조동진' 앨범 커버. 사진/최소우주·도이키뮤직
조동익은 이번 앨범에서 연주, 편곡, 믹싱, 마스터링에 참여했다. 최소한으로 사용된 고유의 앰비언트(환경음악, 프로그래밍)는 앨범 곳곳에 이슬처럼 반짝인다. 주로 피아노를 고음역대로 연주한 뒤 딜레이를 걸어 낸 효과다. (‘아침이 오고 다시 저물고’ 등)
두 사람은 지난해 여름부터 노란 대문 집과 무지개 스튜디오(조동익 집·작업실의 별칭)에서 대략 6개월간 작업에 전념했다. 방음시설이 없어 생으로 투과되는 자연의 소리는 때로 영감이 되기도 했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배려와 이해로 좀 너그러워졌어요. 급하게 서두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기다려야하죠. 그 기다림이 어느 순간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유행병 장기화에 대면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깜짝 질문을 했다. 인터뷰를 대면으로 했다면 어디가 좋았을지 묻자 “‘밀라노의 아침’”이란 답이 돌아온다.
“제주 애월 해안도로에 위치했던 (지금은 없어진) 테이크아웃 이동 커피점입니다. 조동진 선배님과 함께 커피 마시러 자주 갔었어요. 서울로 다시 가셨을 때도 제주에 오시면 꼭 들르셨던 곳.”
애월 향이 물씬 나는 답변도 보태줬다.
“촉촉한 새벽 숲을 천천히 걸으며 들으면 좋을 앨범입니다. 혹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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