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 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어떤 이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Be Sweet' 뮤직비디오. 사진/유튜브 캡처
영화 ‘스타워즈’ 광선검의 전율을 ‘청각화’ 하면 이런 느낌일까. 그의 악곡이 네온 필터로 물든 상상을 잠시 했다.
롤랜드 신디사이저 ‘주노6’가 뿜어내는 80년대 뉴웨이브 풍 사운드. 찰랑, 찰랑. 약동하는 비트 기저, 무지개빛 선율과 안개 같은 노이즈를 오가는 슈게이징 기타 사운드.
지름 12cm의 앨범재킷(CD)에는 알알이 여문 주황 과일들이 동그란 음표처럼 낙하한다.
“‘감(GAM)’! 충분히 숙성돼야 떨어지는 과일. 이스라엘의 ‘희년(禧年, Jubilee)’ 같아요.”
한국계 미국인 미셸 조너 원맨 밴드 '재패니즈브렉퍼스트'. 사진/리플레이뮤직
알파벳으로 감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원맨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미셸 조너(32). 이달 초 그가 낸 싱글 ‘비 스윗(Be Sweet)’은 세계적인 음악 전문 매거진 피치포크 ‘베스트 뉴 트랙(Best New Track)’에 선정됐다. 오는 6월 발표 예정인 3번째 정규작 ‘Jubilee’의 전체 색깔을 규정하는 곡이다.
18일 서면으로 미국 오레곤주에 살고 있는 조너와 만났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슬픔’과 정 반대편에 있는 감정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연구해봤다”며 “삶의 즐거움, 환희 같은 주제가 떠올랐다”고 했다.
신보에는 이 곡을 비롯해 총 10곡이 수록된다. 전작에 비해 비교적 밝고 경쾌한 무드가 앨범 전반을 지배한다.
“성경에 의하면 ‘Jubilee’는 이스라엘에서 50년 마다 공포되는 안식의 해죠. 우리도 축제 같은 삶의 시간이 필요해요.”
국내에서 조너는 2017년 췌장암으로 한국인 어머니를 잃은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를 시작했다. 2016년 첫 데뷔 앨범 ‘사이코폼프(Psychopomp)’는 두 번의 화학 치료 끝에 투병을 포기한 어머니와 그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이야기다. ‘죽은 영혼을 사후 세계로 데려가는 존재(Psychopomp)’를 묘사한 카를 융 서적의 개념을 제목으로 썼다.
앨범과 동명의 수록곡에는 그가 곁을 지키던 생전 어머니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괜찮아 괜찮아. 아가, 괜찮아. 울지 마(It’s okay sweetheart. Don’t cry).‘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Be Sweet' 뮤직비디오. 사진/유튜브 캡처
“어머니는 제 음악에 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내부 감정들로부터 길어낸 곡들이니까요. 슬픔과 혼돈은 음악이 됐고, 음악은 다시 저를 자연 치유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발표한 뮤직비디오들 역시 ‘한국필’로 음악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분홍 저고리와 노란 치마, 가채(‘Everybody Wants to Love You’). 소맥과 한국 마트, “너는 천국을 믿니?” 하는 한국어(‘In Heaven’).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한복은 과거 결혼식 때 어머니가 입은 옷이다. 지금도 어머니로부터 배운 오징어채, 잣죽, 갈비쌈을 먹으며 슬픔을 달랜다. 팬데믹 전에는 매해 여름 엄마의 나라 한국을 찾았다. 서울, 부산, 전주, 제주를 특히 좋아한다.
“음악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는 조너는 “단지 나의 고통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음악을 원했던 것 같다. 당시는 극한 슬픔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다”고 했다.
2017년 2집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역시 데뷔작과 함께 음악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롤링스톤 올해의 앨범 50에 선정됐으며 가디언은 “누군가를 잃는다는 절망이 감성을 극대화시켰다”고 평했다.
특히 2집에선 일렉기타와 스피커 간격에 따른 ‘하울링’으로 소리 순환공명을 일으키는 실험도 펼친다. (‘Diving Woman’) 우주 굉음 같은 후주는 게리 무어 ‘Parisienne Walkways’, 퀸 ‘Ogre Battle’를 연상시킨다.
그는 “기타 피드백 주법을 프로툴에 투과하면 그런 소리를 얻을 수 있다”며 “보통은 기타를 이용해 곡의 뼈대를 만들고 신디사이저나 베이스의 비트, 이후 퓨즈페달과 호른 등을 추가시켜 곡을 완성한다”고 했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사진/위키피디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에게도 그의 음악은 ‘치료제’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조너는 “음악은 충분히 치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내 3집이 ‘전환점 같은 이 시대’에 우리 모두에 ‘밝은 기운’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2016년 그는 신예로서는 이례적으로 피비 브리저스, 크루앙빈, 슬로다이브 등이 속한 데드오션레코즈와 계약했다. 이번 신보로 글로벌 뮤지션으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는 4월에는 미 유명 잡지 ‘뉴요커’에 기고한 에세이 ‘Crying In H Mart’를 국내 출간(문학동네 예정)한다.
‘짜장면과 총각김치, 동치미를 좋아한다’는 그와 실제 ‘밥 한 끼’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조너, 당신의 음악 여정은 어디쯤 있나요?”
“스페인의 여름 정도? 아주 따뜻하고 폭발할 것 같은 느낌. 다음엔 우리 더 뜨거운 도시, 서울에서 만나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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