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국내외 관광 활성화 대책을 보고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앞으로도 방송법·간호법·김건희 특검(특별검사)법 등 야권발 처리 법안에 대한 입법 저지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거부권 땐 재의결 확률 '뚝'…방송법 '정국 뇌관'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의 거부권 행사 건의에 지난 23일 민주당 주도로 처리된 양곡관리법이 6일 만에 좌초 위기에 놓였습니다. 야권이 재석 266명 중 찬성 169명, 반대 90명, 기권 7명으로 가결시키며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벽까지 넘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4일 전남 나주시 노안농협 육묘장에서 직원들이 모판에서 발화한 볏모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헌법 제53조 2항에 따라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처리된 법안에 이의가 있을 때 이를 15일 이내에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재의가 요구된 법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문턱이 높아지게 됩니다. 민주당이 169석을 가진 원내 제1당이지만, 국민의힘 의석(115석)이 전체 3분의 1(100석)을 넘는 만큼 의결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양곡관리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재 민주당이 통과시키려고 노력 중인 각종 법안이 거부권 대상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적인 예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의 내용이 담긴 방송법 개정안입니다. 민주당은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송법 개정안 등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단독 처리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에 반발해 의결 전 퇴장하면서 "민주당의 방송법 개악안 처리 과정은 처음부터 날치기"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과방위원장이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안'에 대해 무기명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제 방송법 개정안은 본회의에서 부의·표결 절차를 밟을 전망입니다. 시종일관 개정안에 반대해왔던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에 대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해 법안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4월로 넘어간 김건희 특검법도 '거부권' 유력
여기에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개선 등이 담긴 간호법 개정안과 살인, 중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최대 5년간 제한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민주당이 직회부한 간호법·의료법 개정안은 23일 표결 끝에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표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시 이를 반대해왔던 여권에서 거부권 행사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주당이 통과를 원하고 있는 김건희 특검법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유력합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에 이어 9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뇌물성 협찬 의혹 등을 규명할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노려왔습니다. 이를 위해 정의당에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은 지난달 정의당 발의 법안으로, 김건희 특검법은 민주당 발의 법안으로 30일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의당이 이날 민주당 제안과 달리 통상의 절차대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계획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입니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민주당 의지가 매우 강력한 만큼 본회의 통과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후 법안이 통과된다면 민주당의 김건희 특검법 추진을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재판 물타기"로 규정한 국민의힘의 저지가 예상됩니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결백하다는 취지의 해명문을 내기도 했던 대통령실인 만큼 여권 요구에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현재 한일 정상회담 논란, 이재명 사법리스크 등으로 인해 냉랭해진 여야 관계는 더 얼어붙을 전망입니다. 민생 법안 처리 등이 물 건너감은 물론, 여야가 당분간 극한 대결만 벌이는 정쟁의 장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입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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