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상호금융권이 가계대출 취급을 잇따라 중단하면서 실수요자들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자 고신용자들이 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영향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리 등 시장 가격이 아닌 총량 규제 중심 정책이 부작용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규제 풍선효과 가시화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이달 중 모집인을 통한 가계대출 취급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전날 새마을금고는 모집인을 통한 가계대출 취급을 중단했고 이주비·중도금·잔금 등 집단대출도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협중앙회 역시 오는 23일부터 모집인 대출을 중단할 예정입니다. 수협중앙회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전년 대비 2%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상호금융권이 잇따라 대출 문턱을 높이는 이유는 가계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조원 감소한 반면 상호금융을 중심으로 2금융권에서는 2조4000억원 증가했습니다. 기관별로는 농협이 1조4000억원으로 증가 폭이 가장 컸고, 새마을금고 8000억원, 신협 2000억원 순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가계대출을 전년 대비 5조3100억원 늘리며 증가액 목표치를 4배나 초과했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증가분 총액(5조7462억원)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올해 들어서도 대출 수요가 줄지 않자 총량 관리를 위해 관련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금융사 입장에서는 고신용자가 유입될 경우 건전성 관리가 수월해지는 만큼 이들 수요를 우선 수용한 뒤, 후순위 차주를 받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2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이동하면서 고신용자와 중저신용자가 함께 몰렸다"면서 "금융사 입장에서는 연체 가능성이 낮은 고신용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금융사들은 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연말에 문턱을 높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취급한 대출 규모를 고려해 연말에 속도를 조절하고 새해가 되면 다시 대출 창구를 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연초부터 대출을 잇따라 중단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대출이 중단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쪽은 자금이 급한 실수요자입니다. 은행에 비해 대출 등 자산 운용 방식이 제한적인 2금융권 역시 대출이 막히면 자금을 굴릴 방법이 줄어듭니다. 결과적으로 연초부터 대출이 막히는 상황은 금융사와 실수요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2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대출을 막는다고 해서 수요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출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생계형 대출에 의존하던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가 대출 관리를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이라 금융사들도 대응 여력이 크지 않다"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대출 여건이 더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대출 총량 규제 여파
개인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금융사별 대출 총량까지 제한하자 전 금융권 대출 여력이 줄었습니다. 또한 고신용자들이 은행권(40%)과 비은행권(50%) 사이에 존재하는 DSR 규제 비율 차이를 활용한 '대출 쇼핑'에 나서면서 이런 흐름이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대출 여력이 부족한 중저신용자들은 시장에서 밀려 자금 조달이 한층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금융당국은 올해 역시 가계대출 총량을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KB국민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지난해 연간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초과해 대출을 취급한 금융사들은 정부 규제에 따라 올해 목표치를 더 낮춰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한층 강화하면서 금융사 입장에서는 경쟁적으로 대출을 확대할 유인도 줄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대출 총량 규제의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총량 규제가 시행된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마땅한 정책 수단을 찾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정책이 불확실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서 "결과적으로 서민 대출을 옥죄는 효과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금리 같은 시장 가격 메커니즘이 아니라 총량 규제 중심으로 통제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경제 흐름이 위축되면 자영업자 등 취약 차주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6·27부동산대책 당시 그렇게 규제를 시행했어서는 안 됐다"며 "지금은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 정부가 규제를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교수는 "금융사들도 대출을 늘리고 싶겠지만 정부 규제가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대응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밀려난 중저신용자가 사금융으로 이동하게 되면 그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사진은 서울 시내 공인중개사에 매물이 안내되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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