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29일 오후 4시경 서울 강동구 성내동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정원영.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낮인데도 노란 불을 밝힌 공간은 분위기가 제법 은은했다. 창문에 스며드는 햇빛 한 줌, 바람 한 점이 그의 음악처럼 자꾸 볼을 살랑였다.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부 교수이자 뮤지션 정원영(60)의 작업실 겸 음악 쉼터.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게 삶이지만, 이 방은 종종 그에게 ‘여백’을 준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경 서울 강동구 성내동 인근 이 곳에서 만난 그는 “20년 넘도록 작업실은 ‘혼자서 아무것도 안할 수 있는 자유’의 다른 말이었다”며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조용히, (3초 쯤 침묵) 이렇게 있을 때가 많다”며 웃어 보였다.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와 카시오 프리비아 디지털 건반이 3~4m 거리로 등진 채 놓여 있는 이 방에선 작곡을 하다 책을 읽고 때론 의자에 누워 공상에 빠지는 것이 가능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현실에 ‘쉼표’ 한 점을 찍는 시간. 이 안온은 다시 그를 건반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백색 종이에 바를 정(正) 자를 곡당 50개씩 그리며 노래한다. 삶의 고민을 두른 언어들이 재차 멜로디의 옷을 입는다.
‘사랑과 평화’,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긱스’ 등을 거친 뮤지션 정원영이 밴드구성으로 돌아왔다. 2005년 정원영밴드의 1집을 함께 한 원년 멤버들(임헌일, 한가람, 박은찬, 박혜리, 홍성지, 최금비)과 긴 여백 끝에 다시 뭉쳤다. 스무살 초반의 앳되던 청년들과 무려 15년 만의 음악적 재회. 어느새 제자들은 각 분야의 최고 실력자가 돼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이적, 김동률, 이소라, 임재범, 윤종신 등 국내 최정상급 뮤지션들의 소리를 매만지는 연주자들. 이제는 팀명마저 ‘정원영과 슈퍼밴드’로 개명해도 무방할 듯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 사진작가가 가정집 사진을 찍어 정원영에게 보내줬다. 정원영은 'HOUSE'와 'HOME'의 차이를 연신 강조하며 앨범에서의 집은 '가정'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정원영밴드
지난해 김민기 주도의 학전 릴레이 콘서트가 재결성의 주 계기다.
당시 김수철, 전인권 등 원로 선배들이 그에게 물었다. “원영이는 뭐(어떤 공연) 할래?” 급히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15년 전 동고동락하던, 이제는 각 분야 최고가 된 제자들에게.
한 걸음에 내달려온 그들과 다시 예전처럼 무대에 올랐다. “이대로 끝내기 아쉽다”는 소리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면서 ‘그럼 음반을 내보자’는 결의를 다함께 다졌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제자들은 그와 ‘음악적 동료’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의견을 청취하고 덧대며 서로의 인생관, 음악관이 중층적으로 얽히고설켰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 나오던 그런 50년대 기타 사운드 같은 건 어때?” “은찬이 드럼톤은 역시 스티브 갯 같아요. 펑키하거나 샤프하지 않고 아주 따뜻하잖아요.”
정원영과 2005년 원년멤버들. 사진/정원영밴드
지난달 23일 발표된 정원영밴드의 3집 ‘HOME’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총 8곡이 수록된 앨범은 첫 곡 ‘괜찮아 질거야’부터 웅장한 현의 스케일이 광대한 소리 풍경을 만들어 낸다. 과거 고통과 아픔의 기억을 턴 뒤, 새로운 삶의 챕터를 여는 듯한 느낌으로. 학교에서 살을 부대끼며 접하는 20대 청춘들의 아픔, 이에 이입하며 아파하는 자신, 그리고 별반 다르지 않은 주변의 모든 이들의 상황이 이 한 곡에 흐른다. 겨울을 지나 봄에 닿을 듯한 화자는 그 길목에서 ‘꽃의 나라’로 가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우리 모두는 이 곡 안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노래를 쓰면서 제 안의 감정을 털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살아야겠습니다’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타이틀곡 ‘가령’은 아침에 끓이는 담백한 된장국 같다. 삶의 애환을 화자는 일상의 힘, 요리 과정으로 치유한다. 곡 중간에 샘플링된 파 써는 소리는 뽀얀 김으로 덮인 주방의 아늑한 풍경으로 청자를 데려간다. 덤덤한 목소리로 ‘백선생 요리는 쉬울까’ 자문하는 정원영의 노랫말들에 피식 하는 웃음도 절로 새어나온다.
곡은 후반부 갑작스레 사운드를 뒤틀며 사이키델릭 록으로 나아가는 실험성도 보인다.
“작업 초반 이 곡은 아주 우울한 노래였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출장 차 LA KCON을 갔다가 마음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아침 출근 때 듣기 좋은 상쾌한 음악이면 좋을 것 같았어요. 후반 30초를 남겨두곤 비틀스 ‘strawberry fields forever’ 같은 변주를 줘보기로 했습니다.”
대체로 유쾌하고 밝은 초반의 멜로디는 광활한 사막을 질주하는 듯한 ‘기타맨’까지 이어지다 4번곡 ‘미처 하지 못한 말’부터 다시 일정 정도 가라앉는다. 깊은 타건이 빚어낸 음의 두터움이 잔잔한 구름처럼 낮고 느린 소리 풍경을 만들어 간다. 이 곡은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에 관한 곡.
다만, 따뜻한 소리 질감은 방의 노란 불 만큼이나 은근한 위로를 준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며 새벽 늦게 돌아오는 아들을 위한 마지막 곡 ‘순대국’까지. 한음, 한음 세심히 누르는 전자건반은 시뻘건 다대기 한 줌 넣은 순대국 만큼이나 팽팽한 생의 긴장과 상처를 따스하게 보듬어준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정원영.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앨범 제목에 ‘HOME’을 새긴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편안하게 안심할 수 있는 공간. 바깥에 있더라도 날 보호해 줄 수 있는 느낌.” “자신과 주변 이들의 삶이 겹쳐져 있다”는 그는 그들과의 시간을 ‘집’으로 은유했다. 오랜 음악 '지음(知音)'과 함께 한 느낌 역시 집과 닮아 있었다. “집은 언제든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하는 만큼 발을 뻗고 쉴 수 있지 않습니까. 이 공간이라면 제 속에 묵혀 있던, 응어리졌던 감정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960년 생인 그는 한국대중음악사에 굵직한 밴드들을 여럿 거쳤다. ‘사랑과 평화’,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등에서 활동했고 1984년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7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신중현과 한대수, 조용필, 김수철, ‘산울림’ 김창완, ‘들국화’의 최성원, 전인권 등을 들으며 밴드맨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아직 뜨거운 록의 꿈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솔로 초창기 조동진 사단으로 불리는 ‘하나음악’에 몸담기도 했던 그는 “조동진, 송창식, 이장희, 김민기 선배님들은 늘 음악 안에서 사셨던 분들”이라며 “그분들의 노래를 라디오로 접하던 그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저나 제 후배들에게서 나오는 노랫말들에도 자연스레 그분들의 영향이 섞여 있다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제자들과의 작업이 그의 창작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다음앨범 작업을 위해 최근 그는 미디 학원도 등록했다. “EDM 계열의 댄서블한 음악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영국 트립합 밴드 매시브 어택 같은 사운드를 최근 듣고 있거든요. 제 솔로 5집 같은 오리지널 피아노 소품곡 같은 앨범도 생각하고 있어요.” 오는 8월8일에는 밴드 멤버들과 쇼케이스 무대에 함께 오른다.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을 여행지에 비유해달라고 요청하니 “명확하게 답해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여행인 거예요. 기차를 타든, 차를 타든, 이제 막 떠나기 시작한 거죠. 얼마나 다들 벅차고 업 돼 있겠어요. 여행이 시작된 거죠. 함께 있기에 어디든 갈 수 있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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