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이 한미정상회담 이후 첫 반응으로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 비판 입장을 내놓은 것은 오히려 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외무성 등 당국이 직접 입장을 낸 것이 아닌, '국제문제평론가'를 내세운 것은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것이다. 한미가 최근 대북정책 조율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실효적인 유인책을 제시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31일 한미 정상이 합의한 미사일지침 종료에 대해 "고의적인 적대행위"라고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통신은 '무엇을 노린 미사일지침 종료인가'라는 제목의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의 글을 통해 "이미 수차례에 걸쳐 '미사일지침'의 개정을 승인해 탄두중량제한을 해제한 것도 모자라 사거리제한 문턱까지 없애도록 한 미국의 처사는 고의적인 적대행위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31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첫 반응으로 한미 간 미사일지침 종료 비판 입장을 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5일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실명은 직접 거론하지 않고 "일을 저질러놓고는 죄의식에 싸여 이쪽저쪽의 반응이 어떠한지 촉각을 세우고 엿보고 있는 그 비루한 꼴이 실로 역겹다"고 지적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10일만에 나온 북한의 첫 '공개 반응'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공식 반응"으로는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북한의 고위 인사가 아닌 '평론가'의 글을 통해 입장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이 점에 주목하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위 조절에 나선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대화에 나서겠다는 간접적인 의지의 표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미국 워싱턴 시간으로 오후라는 점과 대외 논평을 개인 평론가가 했다는 점, 한미정상회담 결과 전반이 아니라 미사일지침 종료 문제만 콕 집어서 지적했다는 점 등을 볼 때 물위에서는 미국과 기싸움의 모양새를 보여주되 물밑으로는 접촉과 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대놓고 (비판)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평론가 개인 명의로 나온 것은 여러 가지 여지를 둔 것"이라며 "북한이 하고 싶었던 말을 우회적으로,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 대화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내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고위 당국자가 대북정책을 조율하며 북미협상 여건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유인책 제시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논평에서 "지금 많은 나라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고안해낸 '실용적 접근법'이니, '최대 유연성’이니 하는 대조선정책 기조들이 한갖 권모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오늘 나온 평론은 미국측이 밝힌 실용적 접근법, 최대 유연성이라는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유인책 제시를 요구, 압박하는 성격의 메시지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논평에서 대부분 미국을 향한 비판에 중점을 둔 것은 사실상 북한이 남북관계 보다는 북미관계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김용현 교수는 "북한은 북미 부분이 우선"이라며 "북한은 미국이 바이든 체제가 정비가 됐다면 빨리 카드를 꺼내라, 그 다음에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관련된 카드를 꺼내면 북한이 거기에 대해서 반응을 하겠다는 것을 압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북한이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를 비난한 데 대해 "신중한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개인명의의 글로 이해하고 있다"며 "특별히 어떤 공식 직위나 직함에 따라 발표된 글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