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등용 기자] 정부가 오는 7월부터 근로자 수 5~49인 기업에도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할 예정인 가운데 주요 대상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정부가 주52시간제를 지키는 기업 중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장엔 월 120만원 지원을 약속하는 등 여러 당근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의 진짜 어려움을 모른다’는 질타만 받고 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주52시간제 유예와 함께 사업장 규모에 따른 제도의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27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지방에서 용접 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당장 다음달부터 주52시간제를 도입해야 하는 기업이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주 근로 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게 되면 인력도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사람 구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A씨는 “열처리 업종 같은 경우엔 한 번 열을 올릴 때 돈이 많이 들다 보니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한다”면서 “이런 작업을 하려면 야근도 하고 특근도 해야 하는데 주52시간제를 지키면서 이것이 가능하겠나”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주52시간제가 근로자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것이 A씨의 생각이다. 그는 “근로 시간이 줄면 근로자들의 임금도 줄텐데 대략 15% 정도 깎일 것으로 본다”면서 “월 120만원을 평생 줄 것도 아니고, 일 할 사람을 더 공급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정부 대책에 일침을 날렸다.
수도권에서 주물 업체를 하고 있는 B씨의 의견도 비슷하다. 이 업체는 60대의 고령 근로자가 많은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도 함께 고용돼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60대 근로자들의 은퇴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외국인 근로자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제 때 수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B씨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기본적으로 일을 많이 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근로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중소기업으로 올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산업이 고도화 되면서 업종마다 상황도 다 다른데 일률적으로 근로 시간을 정한다는 것이 제조업에서는 쉽지 않다”면서 “쥐를 몰더라도 도망갈 구멍은 만들어주고 몰아야 하는데 이렇게 퇴로 없이 밀어붙이면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 했다.
자영업자들의 처지도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대표적인 곳이 동네 마트다. 규모가 작은 곳은 직원 수가 5명이 안 되기도 하지만 규모가 큰 곳은 직원 수가 40명이 넘기도 한다. 동네 마트 역시 주52시간제 적용 대상이지만 판매업의 특성상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도 없다.
김성민 한국마트협회 회장은 “근로 시간을 줄인 만큼 추가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숙련된 인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휴무 일수도 늘어날텐데 당장 월급 50만원만 깎아도 생활이 어려워질 분이 많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업계에선 주52시간제 유예와 함께 유연한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협의해서 근로 시간이 추가로 필요할 경우엔 일정 기준을 둬서 이를 허용하는 등 현장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코로나19 사태와 최저임금 인상 가능성으로 중소기업은 주52시간제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면서 “미국처럼 법정 근로 시간이 주40시간이더라도 노사 합의로 연장 근무를 허용하는 것과 같은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한 중소기업의 생산 공장 내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정등용 기자 dyzpow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