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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헌법개정의회, 시민의회 등을 검토해야
입력 : 2021-07-12 오전 6:00:00
7월 17일 제헌절을 앞두고 다시 개헌 얘기가 나온다. 국회의장도 개헌을 얘기하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도 개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대로라면, 기대되는 것이 전혀 없다. 정치권 내의 논의로는 개헌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돌아보면 명확하다. 
 
그동안 개헌논의는 줄기차게 있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1987년 개헌을 한 이후에, 헌법을 한 줄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헌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그동안 개헌이 좌초되어 온 이유부터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개헌논의가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선 개헌을 둘러싼 한국의 조건부터 짚어봐야 한다. 한국은 헌법개정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조건에 있는 국가이다. 헌법개정을 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거쳐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이다. 그래서 경성헌법 국가로 분류된다. 
 
또한 정치지형도 개헌을 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거대 양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승자독식의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로 인해 양대 정당간에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권력을 놓친 쪽은 다음 선거 때까지는 상대방 ‘발목잡기’로 일관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개헌같은 중요한 문제를 둘러싼 타협이 이뤄지기 어렵다. 설사 타협이 이뤄진다고 해도, 국민들이 바라는 개혁이 아닌 ‘기득권 나눠먹기’가 되기 쉽다. 그런 개헌은 아니하는 것보다 못하다. 
 
이처럼 헌법개정의 절차가 까다롭고, 정당간에 건강한 토의와 타협이 불가능한 것이 그동안 헌법개정을 번번이 실패하게 만든 원인이다. 이런 원인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의 내용만 얘기하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칠레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칠레의 경우에도 정치불신이 심각하다. 극심한 불평등에 대한 불만 때문에 2019년부터 일어난 대중적인 시위는 헌법개정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기존의 국회가 개헌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제헌의회를 구성해서 개헌안을 만드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래서 지난 5월 제헌의회 선거를 했다. 선거결과는 기존의 정당 외에 무소속 후보들이 약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155명의 제헌의회 의원 중에 무소속 후보가 48명이나 당선됐다. 기존의 집권당은 37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여성이 절반 가까이 당선됐고, 의장도 원주민 여성이 맡았다.
 
앞으로 칠레에서는 1년동안 제헌의회가 운영되며 개헌안을 만들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방식의 개헌추진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국회에서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지만, 국회에서 표결에 붙일 개헌안을 만드는 것은 별도의 헌법개정의회를 구성해서 맡기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먼저 개헌절차법을 통과시키고, 그에 근거해서 헌법개정의회 선거를 하면 된다. 
 
물론 이런 방법이 무척 낯설 수 있다. 그러나 34년이 지나도록 헌법을 손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정치권에 맡겨놓아서는 헌법개정이 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라는 것도 명확하지 않은가? 설사 정치권에서 헌법개정에 관한 합의가 된들, 아주 부분적인 개정에 그치거나 오히려 개악이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결국 시민들이 바라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을 제대로 바꿔야 하고, 그 개정논의의 과정에도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칠레와 같은 시도를 못할 것도 없다.
 
칠레 방식 이외에, 기존에 제안되어 왔던 방식도 있다. 그것은 무작위추첨으로 뽑힌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를 구성해서 개헌의 쟁점들에 대해 토론하고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개헌안 초안은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국민투표로 가게 된다.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는 국가도 있다. 아일랜드는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의회를 통해 개헌안을 논의하면서 개헌을 해 나가고 있다. 
 
칠레와 같은 헌법개정의회 방식이든 무작위 추첨 시민의회 방식이든, 주권자인 시민들이 주도하는 개헌논의의 물꼬가 트여야 한다. 대선주자 중에 진정으로 개헌을 하고자 하는 후보가 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부터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표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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