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복통이라 하면 주로 충수염(맹장염)을 떠올리게 된다. 때때로 드라마에서 오른쪽 아랫배를 움켜지며 고꾸라지는 주인공이 병원을 방문하면 진단받는 질환이다. 이러한 충수염의 증상과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질환이 있는데 바로 게실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게실염 환자는 2010년 3만2317명에서 2019년 5만9457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장 게실(憩室)이란 대장의 점막층과 점막하층이 대장벽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층 중 약해진 부분을 통해 대장 바깥쪽으로 주머니 모양으로 돌출된 상태를 말한다.
게실염은 게실에 대변이나 음식물 찌꺼기 같은 물질들이 끼고 염증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좌측과 우측 대장에 모두 발생할 수 있다. 서양인은 좌측 대장 게실이 80~90%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우측 대장에 있는 경우가 더 흔하다.
선천적으로 생긴 게실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후천적인 게실은 대장 내 압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대장 내 높은 압력이 대장벽을 압박하게 되고 게실을 발생시킬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평소 식습관이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변비가 생겨 대변을 배출하기 위해 더 많은 압력을 대장 내에 가하면서 게실을 발생시킬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또 설탕,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등의 단순당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은 장내에 유해균이 증식해 장내 가스가 발생하고, 대장 내 압력이 증가한다.
고지방, 고단백 식단과 함께 줄어든 섬유질 섭취, 이른바 서구화된 식습관이 여러 소화기질환들을 야기하는데 게실염도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노화로 인한 장벽 약화가 게실 발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게실의 존재 자체만으로는 특별한 증상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다만, 게실염으로 발전하면 여러 증상이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바늘이 아랫배를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발열, 오한, 설사, 구역질 등이 있다.
게실이 있는 경우 혈변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게실 내의 소혈관이 염증으로 인해 손상돼 출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실염의 염증이 심해지면 천공이 생겨 변과 세균이 복강 내로 노출되고 복막염이 발생할 수 있다. 복막염은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심각한 질환이므로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출혈은 흔하지 않게 나타난다. 단, 대량의 출혈이 발생한다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혈변 또는 항문 출혈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게실 내 작은 혈관에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기고 손상된다면 출혈 가능성이 높다. 게실 출혈은 자연적으로 지혈되기도 하지만 출혈양이 많다면 응급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게실은 위·대장내시경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게실이 크거나 다수인 경우에는 복부 CT로 확인된다. 게실염이 발생하면 염증이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 내시경을 해야 하며 게실염 주위에 발생한 합병증 관찰을 위해 복부 CT도 시행한다.
CT는 충수염과 게실염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대장의 맹장 부위에 게실염이 생기면 급성충수염과 혼동할 수 있는데, 게실염은 급성충수염에 비해 증상 발현시기가 일정하지 않고 과거에도 유사한 증상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 또 오른쪽 아래 복부에 통증을 느끼는 충수염과 달리 조금 더 위쪽 또는 측면에서 주로 통증이 나타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복부 CT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게실염은 수 일간 항생제 치료를 시행하면 약 70~80%는 호전된다. 몇주 후 염증이 가라앉으면 대장내시경이나 대장조영술을 시행해 상태를 확인한다. 금식과 항생제에 반응이 없거나 게실염의 합병증인 농양, 천공, 복막염 등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하다. 또한 재발되는 경우가 많아서 약 30% 정도는 5년 내에 재발을 하게 된다. 재발이 잦은 경우에도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게실염 예방에는 섬유질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 등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히 현미와 같이 도정이 덜 된 곡류가 좋다. 또한 육류의 과다 섭취를 피하고 다량의 섬유질 섭취와 함께 매일 1.5ℓ 정도의 물을 마셔 부드러운 대변을 형성해 변비를 막고 규칙적인 배변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는 게실염 예방을 위해 식습관 개선을 강조하면서 빠른 진단과 치료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동우 고려대학교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게실염의 발병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서구화된 식습관을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라며 "평소에 섬유질이 많은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해 장 건강을 지키는 것이 게실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게실염은 방치하면 복막염 등의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이므로 전문의의 진단 하에 빠른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당부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