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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정부가 쏘아올린 '회색 코뿔소'
입력 : 2021-10-26 오후 6:30:00
회색 도시 속 동물원에 코뿔소 한 마리. 생김새와 다르게 하루 종일 우리 안을 서성이다 주는 먹이만 먹는 기제목 동물로 순한 모습이다. 아이들의 호기심 집합장에서 코뿔소의 코를 보고 있으면 우직함이 느껴진다. 육상동물 중 코끼리 다음으로 몸집이 큰 코뿔소는 90년대 한 자동차 광고 이미지처럼 우직하게 돌진하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만약 우리 안을 맴돌던 코뿔소가 울타리 밖 도시를 활개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119부터 군·경, 수렵인까지 돌발 위협으로 간주하고 즉각적인 대응에 들어갔을 듯싶다.
 
그런 코뿔소를 알고도 방치한 이들이 있다. 지난달 거시경제금융회의 당시 첫 회동한 재정·통화·금융 수장들이 꺼낸 경제용어는 놀랍게도 ‘회색 코뿔소’였다.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를 통해 충분히 예측가능성이 있으나 사람들이 간과해 커다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가계부채라는 회색 코뿔소를 누가 부추겼을까.
 
빚 갚을 능력도 없이 자산 부풀리기에만 몰두한 빚투, 영끌족의 잘못을 부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허나 큰 틀에서 보면, 정책적 책임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04%를 넘어섰다. 일본은 64% 수준에 불과하다. 프랑스(65%), 미국(79%), 영국(89%) 등도 우리나라보다 적은 수준이다.
 
반면, GDP 정부부채 비율이 128%를 넘어선 미국은 홍역을 앓고 있다. 막대한 빚을 국민에게 전가하지 않고 국가가 떠 안은 탓이다. 미국뿐만 아니다. 일본 정부 부채는 GDP 대비 230%를 넘은 상태다. 유럽 국가 중 영국과 독일도 각각 133%, 76%를 넘어섰다.
 
금융위기를 경험한 주요국들이 가계 부채로 내몰기 보단 ‘리얼한 확장적 재정’을 택한 결과다. 말로만 확장적 재정 투입을 운운하며 대출로만 내몬 우리나라와는 판이 다르다.
 
이미 선진국들은 지난 금융위기를 통해 가계부채의 뇌관이 얼마나 큰 위기를 불러오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부채 비율은 내년에서야 50%를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즉, 정부만 안정적이다.
 
코로나발 여파로 돈의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 정부의 재정투입을 보자. 정작 돈을 필요한 이들에게 흘러가지 않은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여기서 우린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재난 위기에서 빚을 내야한다면 민간 가계부채와 정부 부채 중 어떤 카드를 쓰는 것이 타당할까.
 
가계부채는 개인파산과 은행권 부실 등 또 다시 금융 위기로 이어진다. 경제적 파국도 만만치 않다.
 
가계 빚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와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 국가 부채의 견고함을 칭찬해야할까. 세월이 흘러 역사가 평가할 때 "난 나라를 망하게 하진 않았다"는 변명만 늘어놓을지 모른다.
 
돈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온기가 잘 전달되도록 배분하고 자산시장의 과열을 차단하는 정책을 펼쳤어야한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1800조원 가계부채’의 산물은 자산 과열과 실물경제의 난제만 남긴 채, 참담한 정책 실패를 방증하고 있다.
 
연방 부채로 미국이 망할까. 그리스의 패러독스에 갇힌 이들이여. 우려는 있되, 오산을 하면 안 됐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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