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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입은 여성 하반신 '몰카'…파기환송심 "벌금 70만원"
입력 : 2021-11-03 오후 2:00:45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파기환송심에서도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형사2부(재판장 최종진)는 최근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1심에서 선고한 형량과 같다. 유무죄 여부를 두고 1, 2심이 갈렸지만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판단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는 형량만을 가려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죄 경위 등에 비춰볼 때 죄질이 좋지 않다"며 "범행을 인정하면서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점은 인정되지만 형량이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서 너무 무겁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중앙홀. 사진/대법원
 
A씨는 2018년 버스에 탑승해 뒤쪽 출입문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다가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여성 B씨가 하차하기 위해 뒤쪽 출입문 옆에 서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B씨의 하반신과 뒤태 동영상을 약 8초간 촬영했다. 당시 B씨는 엉덩이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운동복 상의와 함께 검정 레깅스(신축성이 뛰어난 타이츠 모양의 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A씨의 범행은 곧 발각됐다.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B씨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B씨는 A씨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A씨는 "내려서 바로 지울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용서를 빌었지만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외부로 직접 노출된 피해자의 신체부위가 목 윗 부분과 손, 레깅스 끝단과 운동화 사이의 발목 부분이 전부였던 점 △피해자의 특정 신체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시켜 촬영하지는 않은 점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통상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점 △피해자가 입고 있던 레깅스는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어 젊은 여성이 이를 착용했다고 해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는 점 △피해자의 사건 당시 감정 진술이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피해자가 처벌불원의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이 이유였다. 검찰이 상고했다.
 
대법원에서는 사건 당시 피해자의 감정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이것을 범죄 성립 요건인 '피해자의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 1월 A씨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하고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영상에 담긴 모습이 주로 피해자의 하반신이고 신체의 굴곡과 특징이 드러난 점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된 점 △A씨가 진술한 범행 동기 △피해자의 사건 당시 감정 등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라는 피해자의 진술은 성적 모멸감, 함부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당했다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와 수치심의 표현"이라면서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판시했다. 
 
또 "피해자가 성적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가 보호하는 '성적 자유'에 대한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첫 판단이었다.
 
성폭력처벌법 14조는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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