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에 있는 ‘두물머리’에 다녀왔다. 금강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 금대봉 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 그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두물머리. 한자어로 된 지명, ‘양수리(兩水里)’는 그런 뜻을 품고 있다. 양수리의 ‘수(水)’는 강을 가리킨다. 한강의 옛 지명이 ‘한수(漢水)’였음을 떠올리면 쉽게 그 의미가 다가올 것이다. 두물머리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이 글을 남기고 있지만, 특히 “예서 만난 숫물 북한강과 암물 남한강,/ 음양의 조화는 하늘이 정한 이치이거늘/ 운우지정 나눈 끝에 옥동자를 낳았으니/ 일컬어 위대한 민족의 젖줄, 한강이어라!”라고 노래한 전영택 시인(1942- )의 시가 인상적이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은 남녀 간에 서로 정을 나눈다는 뜻인데, 두물머리의 탄생을 ‘운우지정 나눈 끝에 낳은 옥동자’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발상이 무척이나 독특하고 재미있다. 인용한 시는 그의 시집 『두물머리의 사연을 아는가』(천우, 2004)의 표제작인 「두물머리의 사연을 아는가」의 전체 6연 중에서 3연을 차용한 것.
북한강과 남한강, 두 개의 강이 서로의 강물을 데리고 오랜 시간을 흐르고 흘러 한 곳에서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자신과 다른 곳에서 발원한 강물을 만나 바다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하면, 분명 더 큰 힘이 생기리라. 무엇보다 두 개의 강은 제각각 품고 있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흘러왔기에, 두물머리는 더 멋진 풍경을 펼쳐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기대와 설렘으로 두물머리를 보고 싶었기에 이곳을 찾아왔던 것. 코로나로 모두가 움츠려 있을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겨울바람도 불지 않아 나들이하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대한(大寒)이 지나고 며칠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 앞에 펼쳐진 두물머리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강 위에는 엊그제 내린 눈이 쌓여 있었다. 그야말로 설강(雪江)이었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놓고 있었다. 온통 하얀 색. 이런 설강을 보고 싶었을까, 겹겹이 둘러싼 채 이웃하고 있는 산들도 두 개의 강물이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속삭임을 들을 수는 없었기에 고요로 침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강이 주는 아름다움은 절경이다. 이렇게 설강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풍광을 조선 때의 화가였던 겸재 정선(1676~1759)은 ‘독백탄’으로, 이건필(1830- ?)은 ‘두강승유도’로 각각 남겼는데, 만약 그들이 살아 돌아와 지금 펼쳐진 두물머리의 설경을 그림으로 그려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한편, 이런 풍경과는 달리 잠시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려보면, 안타깝게도 우리는 인간이 뿜어내고 있는 세상 이야기에 한없이 지쳐가고 있다. 햇수로 두 해를 지나가지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 펜데믹은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제는 극복 대신 동거를 모색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띄지만, 일촉즉발로 치달을 것만 같은 국제관계와 내년에 선출할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를 둘러싼 갑론을박 등으로 우리들의 피로는 더해만 가는 양상이다.
아, 이럴 때일수록 두물머리에서 서로 만남을 가지는 남한강과 북한강, 그 두 물줄기처럼 사람들이 서로가 하나가 되어 운우지정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옥동자를 낳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제각각 지닌 물줄기의 아름다움으로 만나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풍경만이라도 연출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내가 지금 만난 이곳의 설경처럼, 이 한 철만이라도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숨 쉬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입춘이 다가오고 있다. 입춘은 한 해 24절기 중 첫째 절기다. 우리는 입춘이 되면 도농 어디에서건 집집마다 일 년 동안의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을 기원하는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풍속을 가진 민족이다. 부디 올해에는 경사스런 일, 다복한 일이 펼쳐지기를 빌어본다. 비록 꽁꽁 얼어버린 두물머리에 서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두꺼운 얼음장 밑에도 여전히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혹한의 계절을 버티고 있는 강 주변의 연꽃들도 꽃 피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