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법원에서 협박으로 접근금지 등의 명령을 받았다면 피해자의 허락이 있더라도 주거지에 찾아가거나 연락하는 것은 가정폭력처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가정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약 4개월 동안 동거한 B씨를 협박해 지난 2018년 9월21일 법원에서 피해자 주거지와 직장에서 100m 이내의 접근금지, 피해자의 휴대전화와 이메일 등으로의 연락금지 등의 임시보호명령 결정을 받았고, 그해 12월13일 같은 내용의 피해자보호명령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해 9월21일부터 2019년 1월31일까지 경기 파주시에 있는 B씨의 집에 접근하거나 출입문 앞에 물건을 놓아두고, 휴대전화로 약 400차례에 걸쳐 문자 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A씨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A씨에 대한 공소사실 중 2018년 10월25일부터 11월20일까지 27회에 걸쳐 B씨 집에 접근하고, 이 기간 416회에 걸쳐 B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임시보호명령을 위반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집 주변에 있는 고양이들의 관리를 부탁했고, 이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거지에 접근한 사실, 또 그 과정에서 관리 방법 등을 문의하면서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해 피해자의 양해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2심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다만 1심의 일부 유·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우선 2018년 10월25일부터 11월20일까지의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원의 임시보호명령은 피해자의 양해 여부에 관계없이 피고인에 대해 접근금지와 문언송신금지를 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원의 허가가 아닌 피해자의 양해나 승낙으로 구성 요건 해당성을 조각할 수 있다고 한다면 개인의 의사로 법원의 명령을 사실상 무효화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주장대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고양이들의 관리와 관련해 지시하면서 피해자에게 연락하거나 피해자의 주거지에 접근하도록 허락했다고 할지라도 이로써 가정폭력처벌법 위반죄의 구성 요건 해당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피고인이 임시보호명령의 발령 사실을 알고도 먼저 피해자에게 연락하기 시작해 피해자가 대응한 것으로 보이는 점, 문자 메시지에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분쟁 상황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고양이들의 관리에 관한 문제 역시 갈등에 이르게 된 원인이나 분쟁의 내용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이 사건 각 범행이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A씨가 임시보호명령 결정 내용을 송달받기 전 B씨의 집에 접근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낸 행위는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각 행위 이전에 임시보호명령을 통지받았다거나 피해자보호명령을 고지받았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거지에 접근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