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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급여 중 피해자 과실은 근로복지공단 부담"
대법 전합 "구상금 청구시 실제 지급 금액에서 근로자 과실비율 제외"
입력 : 2022-03-24 오후 4:52:28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근로자가 자신의 일부 과실로 산업재해를 당한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재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산재보험금을 지급한 뒤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실제 지급한 금액에서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 부분을 제외한 금액만큼만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그동안 재해근로자에게 발생한 전체 손해금액에서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을 적용한 금액을 구상금으로 인정했으나 이를 변경한 것이다. 결국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부분 상당액은 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이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줄어들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4일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발생시켜 근로자를 사망하게 한 한국전력공사와 하청 전기업체 A사를 상대로 "2억2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부분 중 일부를 파기하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뉴시스
이번 사건은 공단의 구상금 청구범위가 '보험급여 전액'인지, 아니면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 부분 상당액이 제외된 금액'으로 제한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지금까지 대법원의 입장은 피해근로자에게 지급된 '보험급여 전액'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단이 제3자의 불법행위로 재해근로자에게 보험급여액을 지급한 다음 산재보험법에따라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대신 청구)할 수 있는 범위는 제3자의 손해배상액을 한도로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 상당액을 공제한 금액, 즉, 보험급여액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보험급여액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공단이 재해근로자를 대위할 수 없으며 이는 보험급여액 지급 후에도 여전히 손해를 전보받지 못한 재해근로자를 위해 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산업재해가 산재보험 가입 사업주와 제3자의 공동불법행위로 발생한 경우에도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범위는 역시 제3자의 손해배상액을 한도로 보험급여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공단이 제3자에 대해 산재보험 가입 사업주의 과실 비율 상당액을 대위할 수 없다는 원칙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 87조 1항 규정은 문언상 공단이 대위할 수 있는 손해배상청구권의 한도만을 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대위할 수 있는 범위를 특정하지 않고, 산재보험법의 연혁이나 입법목적, 산재보험제도의 법적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재해근로자의 손해가 전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은 공단이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재해근로자의 사업주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데 있어서는 사업주와 공단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고 산재보험제도의 복합적인 성격과 기능을 고려한다면,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 상당액을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제외해 재해근로자가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같은 취지에서 "이는 사업주가 산재보험 보험료를 전액 납부한다는 점을 적극 고려하더라도, 사업주는 근로자를 위험에 노출시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과 산업재해 현장의 위험에 노출된 근로자에게 일부 과실이 있다고 해 이를 전적으로 근로자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공단의 피고들에 대한 재해근로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대위 범위를 산정하면서 유족연금에서 재해근로자의 과실부분 상당액을 공제하지 않은 채, '유족연금 전액'에서 재해근로자가 배상받을 손해액 중 보험가입자인 재해근로자 소속사의 과실비율 상당액을 공제한 차액을 구상(대위)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산재보험법상 공단의 손해배상청구권 대위의 범위와 관련해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A사는 2017년 한전으로부터 도로 개설에 따른 배전공사를 도급받았는데, 통신사업자인 B사가 이 공사 중 광케이블 철거공사를 맡았고, 이를 통신업체인 C사에게 도급을 줬다.  그런데 C사 소속 근로자가 작업을 수행하던 중 갑자기 넘어진 전신주에 머리를 다쳐 숨졌다. 당시 작업장에는 전봇대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마련이 소홀했고, 사망 근로자 역시 이를 우려해 사고 전신주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는 작업팀장의 지시를 지키지 않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고였다.
 
공단은 유족에게 산재보험금을 지급한 뒤 한전과 A사를 상대로 지급 보험금 전체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한전과 A사의 책임 비율을 70%, 사망 재해근로자의 과실을 30%로 인정하면서 한전 등이 공단에게 2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한전의 항소로 열린 2심은 책임비율 반영을 1심과 달리 판단하고 9700여만원만 배상금으로 판결했다. 이에 공단이 상고했다.
 
이번 판결로 유사 사건에서 먼저 전체 손해액에서 과실상계를 한 뒤 이금액에서 '보험급여 전액'을 공제해야 한다거나 공단이 '보험급여 전액'에 대해 사고를 일으킨 업자들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본 판결들은 이날로 모두 변경됐다.
 
또 사업주와 제3자의 공동불법행위와 재해근로자의 과실이 합쳐져 산업재해 사건이 발생한 경우, 공단이 '보험급여 전액'에서 재해근로자가 배상받을 손해액 가운데 사업주의 과실비율 상당액을 공제하고 차액이 있는 경우 그 차액에 대해서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들도 모두 변경했다.
 
아울러 동일한 경우 사업주나 제3자가 재해근로자의 손해를 배상함으로써 발생하는 공단의 보험급여 의무 면제 한도를 '보험급여 전액'으로 인정한 종전의 판결들도 모두 변경됐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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