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기소된 구현모 KT 대표가 정치후원금을 건네는 데 명의를 빌려주는 방식이 불법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허정인 판사는 6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구 대표와 KT 임직원 등 10명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서 구 대표는 “불법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며 “비자금이 조성된 경위도 몰랐고, 이를 통해서 얻은 이익도 하나도 없었다”고 발언했다.
그는 “당시 CR(대외협력)부문에서 정치자금 관련 명의를 빌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단지 그런 것을 도와줬을 뿐인데 이 자리까지 온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다. 그때 문제가 되는 사안이었다면 그렇게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 대표 측 변호인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인정한다”면서도 “불법 영득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부외자금이 조성됐을 때 이미 기소가 돼 그 이후 가담한 것은 공범으로 규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되려면 불법으로 다른 사람의 재물을 취득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정치자금 후원은 회사의 이익을 위한 행위이므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구 대표는 2016년 9월 KT 대관담당 임원들로부터 부외자금을 받아 권성동, 권영세 의원 등 국회의원 13명 후원회에 총 1400만원의 정치자금을 자신의 명의로 기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KT는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상품권을 사들인 뒤 현금화하는 소위 '상품권 깡' 수법으로 11억5000만원 상당의 부외자금을 조성하고 그 중 4억3800만여원을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KT 임직원과 지인 등 명의로 100만~300만원씩 금액을 분할해 후원회 계좌에 이체하는 '쪼개기 후원'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과정에서 구 대표가 명의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검찰은 구 대표 등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각각 벌금형 1000만원과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구 대표는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업무상 횡령죄 사건과 별개로 구 대표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같은 법원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가 심리한다. 공식선거법은 정치자금법 위반죄와 다른 죄를 분리 선고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구 대표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첫 공판은 다음달 4일에 열린다.
이날 변호인들은 재판부에 검찰이 분리 기소한 두 사건을 병합 심리를 요청했다. 형사17단독 허정인 판사는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와 논의해 사건 병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구현모 KT 대표가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종로구 KT혜화타워(혜화전화국) 앞에서 KT 유·무선 인터넷 장애와 관련해 취재진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