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이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인지 예산을 국방 예산과 유사한 수준으로 증가시켰다는 대목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문 정부가 남녀 편 가르기를 조장했다는 취지를 이 칼럼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칼럼 제목부터가 '남녀 편 가르기를 양념으로 추가한 文 정부'다.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서 젊은 여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성인지 예산은 국가의 예산을 남녀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배분하는 제도를 뜻한다. 즉 성평등 사업을 위해 별도로 집행하는 예산이 아니라, 예산의 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성평등을 강조하는 일종의 약속 같은 것을 제도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해당 칼럼은 김 후보자의 무지함에 대한 비판으로 번졌다. 명색이 여가부 장관을 꿈꾸는 자가 '성인지'라는 워딩을 남녀 편 가르기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국민들의 비난이 봇물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1년 가량 된 칼럼이 왜 이제와서 문제가 됐을까.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때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면서 돌연 여가부 장관을 임명한 것과 관련이 있다. 취임 전부터 공약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데다, 김 후보자의 칼럼이 재조명되면서 폐지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보수여성단체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관련 단체들이 연대한 '찐(眞)여성주권행동'은 1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김 후보자의 장관 지명철회와 폐지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이들이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여가부가 그동안 부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족과 청소년, 성범죄 업무 등은 더 전문성을 갖춘 부서에서 담당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윤 당선인이 김 후보자를 내정한 것을 두고 의아한 분위기다. 폐지 공약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볼 때, 김 후보자가 여가부를 폐지시키는 '터미네이터 장관'이 되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다. 이는 여가부가 폐지되고 장관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을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자폭 로봇에 빗댄 것이다.
한편으로는 윤 당선인이 여가부에 대한 논란을 더욱 부추겨서 속 시원히 폐지할 구실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오는 6월로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의식해서 여가부 폐지에 대한 애매모호한 입장을 두달여 유지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정말로 폐지를 염두에 뒀다면, 지금 여가부는 '식물 부처'다.
윤민영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