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반도체라고도 불리는 비메모리 반도체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와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 전체 반도체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비중은 각각 약 30%, 70%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스템 반도체 확장에 역점을 두는 이유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오스틴에 20조원을 투자해 제2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기흥사업장과 오스틴 공장을 통해 파운드리 캐파(생산 능력)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전경. 기흥사업장 6라인에서는 8인치 기반의 반도체가 월 30만장이, S1 라인에서는 12인치 반도체가 월 10만~15만장 생산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세계 반도체 시장 3위인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기업 키파운드리 인수와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인 ARM 인수 의지를 피력했다. SK하이닉스도 키파운드리와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IC)를 통해 월 캐파 능력을 월 17만장으로 기존 2배 성장시킨다. SK하이닉스시스템IC와 키파운드리의 월 캐파는 각각 9만장, 8만장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52.1%, 18.3%로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키파운드리 지분 100%를 사들인다고 발표한 지난해 10월 "키파운드리 인수는 SK하이닉스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2배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8인치 파운드리 역량을 보강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와 국내 팹리스 생태계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에 특히나 힘을 싣는 이유는 삼성전자와 달리 자체적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메모리 수요보다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5G 칩, 자동차 반도체 등 다품종을 생산한다.
5G 시장 확대와 내연기관의 자동차가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여기에 대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 파운드리 시장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각각 71%와 25%다. 이미지센서 등 비메모리 비중은 4%에 그친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176단 4D 낸드 기반 512Gb TLC.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인수에도 손을 뻗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최근 회사 주주총회에서 영국 팹리스 제조업체인 암(ARM)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메모리 중심이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포트폴리오가 파운드리에서 설계까지 넓혀가는 모습이다.
ARM은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고객사는 삼성전자, 애플, 인텔, 퀄컴 등이다. 이들은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 때 ARM의 설계를 사용하고, ARM은 이들로부터 지적재산권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자체적으로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시스템LSI라는 사업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글로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이 4%까지 떨어지면서 설계 역량에 의구심이 더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9년 모바일AP 시장에서 점유율 14%로 3위까지 올랐지만, 이듬해부터 감소세를 보이다 지난해 4분기 4%까지 떨어졌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대규모 인수를 단행한다면 자동차용 반도체 제조기업 등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서병훈 삼성전자 IR담당은 지난해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AI, 5G, 전장 등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이 공언한 M&A 약속 시간은 이제 1년 남짓 남았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