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미세공정으로 만들어야 할 칩이 있고, 미세공정이 아닌 칩도 있습니다. 그 칩들을 붙여서 '패키징'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입니다. 여기에 대한 미래 기술 연구개발을 국가에서 더 지원해야 합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지난 17일 경기 판교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사무실에서 이뤄진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다 미세공정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며 앞으로의 개발 방향이 '선택과 집중'이어야 함을 시사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이 지난 17일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마치고 경기 판교 사무실의 사업단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현재 반도체는 그동안 기본 원리인 집적도 향상에서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김 단장은 "2나노 이후 1나노나 1나노 미만으로 갈 수 있는지 여부가 굉장히 의문"이라면서 "2나노까지 오는 동안에도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비용이 비싸져 경제성 여부가 대두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당 2000억원에 이르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역시 반도체 고비용 추세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5나노부터는 EUV를 사용하지 않으면 반도체의 미세공정을 하지 못하게 됐다. 시스템 반도체를 위주로 쓰이다가 D램 일부에도 필요하게 됐다. 2025년 도입되며 성능이 더 좋은 '하이 NA(뉴메리컬 어퍼처) EUV'는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에서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만이 생산이 가능한 독점 체제의 해소는 멀기만 할 전망이다. 김 단장은 "한국에는 광학 연구자가 적어 EUV 국내 개발은 불가능"이라며 "카메라를 굉장히 잘 만드는 일본도 기술 개발을 못해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등 유럽 출장길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그래서 연산속도 향상이 필요한 부분은 미세공정으로 하고, 나머지 그렇지 않은 파트들은 테크놀로지 노드가 좀 높은 쪽에서 하자는 게 흘러가는 방향"이라며 "옛날에는 한 칩에 다 모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칩을 여러개 모아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단은 AI 반도체를 통해 연산속도가 높은 고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AI반도체는 데이터 센터의 처리 부문 및 로봇·드론·자율주행 등 '엣지' 분야에 필요하다. 김 단장은 "현재 인류가 1년에 사용하는 데이터가 50~60제타바이트(55조~66조기가바이트)인데 2025년에는 170제타바이트로 서너배나 증가한다"면서 "굉장히 성능이 좋은 컴퓨터, 컴퓨팅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업단 목표는 고성능이면서도 저전력인 AI 반도체"라며 "수십 와트의 전력을 들여 '1초당 1천조번(페타플롭스)' 계산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2016년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시간당 20와트, 알파고는 170킬로와트의 전력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차이가 컸다.
AI 반도체는 엣지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김 단장은 "자율주행 차량의 경우 들어오는 데이터 분석해서 바로 방향 틀어야한다"면서 "현재 나와있는 반도체로서는 아주 성능이 우수한 로봇을 만들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물류산업대전'에서 참가 업체 관계자가 물류자동화 원스탑 로봇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울러 침체에 빠진 국내의 팹리스 업계를 살릴 길이라는 기대가 있다. 2011년 국내 팹리스의 국제 시장 점유율은 3% 내지 3.5%쯤이었다가 현재는 1%로 급감했다. 10여년 전 피처폰의 경우 칩이 많이 필요했으나,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칩들이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로 통합된 것이다. 수요처가 없어지자 국내 업체들은 문닫거나 매출이 줄어들었다.
김 단장은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를 발전시키려면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면서 "시스템 반도체에 AI 기능을 넣어 칩을 고도화하고 기능을 향상해 시장을 개척하는 방향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꾸준히 제기되는 반도체 인력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학부 수준의 계약학과에서는 생산 라인에 직접 투입되는 오퍼레이팅 그룹을 길러낼 뿐이라는 취지였다. 김 단장은 "연구개발하는 석박사를 양산 가능한 교수가 부족하다"면서 "오고 싶어하는 학생은 많은데 다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돈을 많이 벌자, 2010년쯤 정부는 양사가 많이 지원할 것을 염두에 두고 연구비를 끊었다"면서 "기업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내놓지 않자, 교수들은 연구비를 찾아 나노·디스플레이·바이오 등으로 다 넘어가버렸다"고 한탄했다.
또 "즉, 연구비만 있으면 다시 반도체 쪽으로 올 수 있는 인력이 있다"면서 "사업단 과제의 3분의1이 교수에게 가면서 연구비가 많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삼성전자 뉴스룸' 공개 영상. 네트워크 장비 기업 'RFHIC' 직원들이 반도체 부품의 전극을 미세 금속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뉴시스 사진)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질의하자 김 단장은 "국내 D램은 세계에서 거의 70%의 점유율로, 대한민국 메모리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전세계 IT, ICT 산업은 붕괴한다"며 "반도체는 전략·안보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