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보이면서 올해 소비자물가가 5.1%의 높은 급등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과 가뭄·폭염까지 더해지면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추석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정부는 조만간 추석민생대책을 내놓는다는 전략이나 추석을 앞둔 ‘금리 폭탄’도 예고돼 있어 실질적인 물가 안정과 생계비 경감책이 절실해지고 있다.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개한 '경제동향 8월호'에 따르면 국내 경제 전문가 16명은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5.1%의 소비자물가를 전망했다.
연도별로 보면 소비자물가는 2018년 1.5%, 2019년 0.4%, 2020년 0.5%, 2021년 2.5%를 기록했다. 또 KDI는 올해 기준금리가 0.75%포인트 추가 인상되고, 내년 말까지 3%대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했다.
월 단위로 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대에 진입한 뒤 올해 3월(4.1%)과 4월(4.8%)에 4%대로 올라섰다. 이후 5월 5.4%, 6월 6%, 7월 6.3%를 기록하는 등 올 들어 매월 연고점을 경신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물가 상승률은 정부가 제시한 가을 무렵 충분히 7%대까지 진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DI 관계자는 "소비자물가는 기대인플레이션이 급등한 가운데 공공요금 인상, 농산물 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으로 상승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사실 올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혔던 국제유가 상승세는 최근 다소 안정세를 찾는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주요국에서 경기침체 내지 경기둔화 공포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이달 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2.3%(2.12달러) 떨어진 88.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종가가 배럴당 90달러를 하회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전인 지난 2월 10일 이후 처음이다. 또 같은 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물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93.2달러까지 떨어지며 2월 21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한 달 전보다 13.3포인트(8.6%) 하락한 140.9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전년 동기보다는 16.4포인트(13.1%)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사료비 상승에 따른 원유가격도 심상치 않다.
이 와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생산자, 소비자, 유업체 등 각계가 참여한 ‘낙농산업 발전위원회’에서 유통업체의 마진율이 미국·일본 등에 비해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올해 7월부터 소비자단체와 협력해 유제품의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유제품의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석 직전 3주 동안 축산농가의 거래비용 부담을 경감하고 명절 성수기 출하 물량 증대를 통한 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한우 암소와 돼지에 대해 도축수수료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봄철 가뭄에 이어 최근 장마, 폭염 등 여파로 작황이 크게 악화하면서 채소류, 과일류 가격이 급등한 점도 물가 상승세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들 품목은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급등 시 상대적으로 서민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당장의 높은 물가 상승률도 문제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물가 상승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전망이 갈수록 어둡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향후 1년의 예상 물가 상승률을 의미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4.7%로 6월(3.9%)보다 무려 0.8%포인트나 급증했다.
물가 상승 기대심리가 커지면 경제주체들이 오른 물가 수준에 맞춰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줄줄이 인상하고 이는 다시금 물가가 상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물가 상승률의 정점은 빠르면 9월, 늦으면 10~11월 정도까지는 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상승률이 정점에 다다른다는 의미지 상승세가 꺾인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상승률이 정점에 달한다 해도 물가 상승 자체는 계속 이어진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연말이 돼도 여전히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경제주체들의 물가 기대심리가 강해지고 물가 상승률이 연고점을 경신하면서 이달 2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일단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상승세가 예상과 달리 움직일 경우라는 전제 아래, 금리를 단번에 0.5%포인트 높이는 '빅 스텝' 단행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한은은 국내 물가상승 경로가 관측치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0.25%포인트 금리 인상에 무게가 실린다는 관측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해외 요인에 변화가 없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 2∼3개월 지속된 뒤 조금씩 안정될 것으로 본다"며 "(이 기조가 유지되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려 물가 상승세를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달 중 빠른 시일 내로 물가 안정과 필수 생계비 경감 등 내용을 담은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대책에는 배추, 사과, 배, 소고기, 돼지고기, 계란, 밤, 명태 등 명절 주요 성수품 가격 안정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아울러 비축물량 방출 등을 통해 공급량을 평시 대비 늘리고 각종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년보다 이른 추석에 대비하기 위해 이달 중 민생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다만 구체적 발표 시기와 내용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개한 '경제동향 8월호'에 따르면 국내 경제 전문가 16명은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5.1%의 소비자물가를 전망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