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우리나라 정부가 '칩(Chip)4' 예비회의에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주요 수출 기업은 협의체 참여를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10곳 중 4곳은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신중한 참여를 원했다.
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수출 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대외 환경 변화에 따른 수출 전망과 정책 과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3.4%는 '칩4'에 '참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41.3%는 '참여는 하되 당장은 보류하는 것이 낫다'고 응답해 참여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의견도 나왔다. 반대로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5.3%에 불과했다.
"수출 기업 의견 충분히 반영한 전략 마련해야"
'칩4'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50.0%), '반도체 공급망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41.9%) 등의 응답이 나왔다.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란 응답도 8.1%로 조사됐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망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며, '칩4' 동맹 참여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목소리"라면서도 "그러나 가입 시 우리 기업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기업의 의견을 충분히 조사하고, 이를 반영한 가입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3월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는 팹리스(미국), 파운드리(한국·대만), 소재·장비(일본)에 각각 강점이 있는 4개국이 반도체 공급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칩4 가입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해 온 우리 정부는 최근 미국 측에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다음 달 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예비회의에서는 협의체 공식 명칭과 세부 의제, 참여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들이 바라는 정부의 대외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 확보 등 경제 안보 강화'(37.3%)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신규 시장 진출 등 수출 다변화 지원'(26.1%), '양자·다자 자유무역협정 확대 등 통상 전략 강화'(25.3%), '주요 수출 대상국과의 무역 구조 분석과 전략 산업 육성'(11.3%) 순으로 집계됐다.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중점적으로 협력해야 할 국가 1위는 미국(47.3%)이었다. 대한상의는 "미국이 자원, 첨단기술 등을 모두 보유한 안정적 공급처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33.7%), 유럽(15.3%), 중동·아프리카(13.0%) 등의 순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 시각)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칩스 플러스'(반도체 칩과 과학법)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중국 리스크 등 우려' 64%, 하반기 수출 감소 전망
이번 조사에서 우리 기업의 60% 이상은 올해 하반기는 물론 내년 수출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응답 기업의 64.7%는 '올해 하반기 수출은 상반기 대비 감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큰 변동이 없을 것'이란 응답은 23.0%, '증가할 것'이란 응답은 12.3%였다. 하반기 수출 변화율 전망에 대해 평균을 낸 결과 상반기 대비 2.81% 감소로 파악됐다.
수출 감소 전망 기업을 대상으로 감소 원인을 질문한 결과 중국 등 주요 대상국의 수요 감소를 나타내는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가 44.3%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부품·원자재가 인상 충격(Components and Commodity Shock)이 37.6%, 공급망 위기(Chain Crisis)(18.1%) 순이었다.
특히 중국 진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평균보다 높은 72.1%의 기업이 하반기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 4.8%에서 2분기 0.4%로 크게 하락한 상황이다. 중국의 수출성장률도 올해 상반기 14.2%로 지난해 상반기 38.5%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대한상의는 부품에 대해서도 "기존 공급망이 막힌 데다 원자재 가격마저 급등하면서 수급 불안정, 원가 부담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19가지 원자재 가격을 평균 산출한 CRB(Commodity Research Bureau) 지수는 지난 6월9일 351.25로 최고점을 찍었고, 이는 올해 초(1월3일 기준) 기록한 247.69보다 41.81% 상승한 수치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전 세계적인 물류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가 겹치면서 우리 기업은 원자재 수급 애로, 해상·항공 물류 지연과 비용 급상승 등 공급망 위기를 겪고 있다.
내년 수출 전망에 대해서도 응답 기업의 66%는 '올해보다 더 감소할 것'이라고 답변했고, '증가할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5.7%에 그쳤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