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며 전국 경찰서장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에게 대기발령 조치를, 회의 참석자들에게는 감찰을 지시한 인사 조치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다만, 송 위원장은 경찰국 신설에 따른 인권 침해 우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입장 밝히기를 피했다. 송 위원장은 여야의 집중 추궁에 “여러 논의를 지켜보고 있는 단계로, 어떤 판단을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다”며 진땀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송 위원장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영환 민주당 의원이 ‘지난 전국 경찰서장회의에 참석한 총경급 경찰 간부들에게 불이익 조치를 취하고 감찰을 시행한 것이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동의를 표했다. 이어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하는 입장에 대해서 반박하고 싶지 않다”고 재차 소신을 밝혔다. 송 위원장은 오 의원이 “(총경급 경찰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이)인권침해 우려가 있다고 보시는 거냐”고 묻자 “그렇다”고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윤석열정부 의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놓고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에게는 대기발령 조치가, 회의 참석자 56명에 대해서는 감찰에 착수했다. 집단반발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을 통상 40일에서 4일로 대폭 단축하는 등 속도전으로 경찰 반대를 잠재웠다. 이 과정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쿠데타"에 비유하는가 하면, 경찰대학 출신 간부들을 집단항명의 배후로 지목하며 경찰 내 갈라치기도 시도했다.
그러자 경찰청 인권위는 지난달 29일 회의를 열고 “총경 회의 참여자들과 경찰국 설치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명한 다른 경찰관들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회의 참석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송 위원장도 경찰청 인권위와 동일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송 위원장은 전국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들에게 인사 조치 등 불이익을 주는 행태를 ‘민주주의 위협’이라고 규정한 것과 달리, 경찰국 설치와 인권침해 연관성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여야 양측의 의견에 대해 “알고 있다”며 그 어떤 의견도 내지 않으려는 모습이 도드라졌다.
먼저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국민의힘이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송 위원장에게 “경찰국 설치에 대해서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앞서 운영위 소속 전용기 민주당 의원이 인권위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인권위는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및 행안위 장관의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 제정에 따른 인권침해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또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은 두텁게 보호돼야 한다”며 “우리 위원회는 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송 위원장을 향해 “경찰국 설치는 비대해진 경찰 권력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오히려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날을 세웠다. 같은 당의 김병욱 의원도 “경찰국 때문에 인권이 우려된다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며 “인권위가 이런 반상식적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문제다.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당연히 경찰국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하며 반격에 나섰다. 김영배 의원은 “수사권 장악을 위해 정부가 시행령 쿠데타를 통해 경찰국을 신설했다”며 “경찰국이 정권 보위를 위한 선봉대 역할을 자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장의 분명한 답변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영환 의원은 “경찰국 신설이 과거 치안본부에서 우리가 경험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고 증명할 길이 없는데 인권위원장으로서 좀 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거 경찰이 1987년 박종철 열사에게 물고문 등을 가해 숨지게 했고, 이를 숨기기 위해 “턱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거짓 사인을 발표한 점을 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송 위원장은 “경찰국 신설로 인해서 직접적으로 인권 침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이것이 최종적으로, 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관해서는 우려 섞인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인권위는 여러 논의를 지켜보고 있는 단계로, 어떤 판단을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그럴 가능성(인권침해)에 대비해서 진행 상황을 잘 살피고 어떤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적절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또 “경찰 수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데) 저희들은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그 방법론에 관해서는 좀 시각을 달리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흐렸다.
송 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며 “그 (미흡한)부분을 일거에 완벽하게 해결하긴 어렵지만 점차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영순 민주당 의원이 중대재해처벌법상 처벌 내용을 완화하는 시행령 개정 움직임에 대해 묻자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법의 애당초 제정 취지가 퇴색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잘 지켜보다가 필요하면 적절한 의견을 내겠다”고 답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