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내자불선 선자불래
입력 : 2022-09-20 오전 6:00:00
몇 년 전 공공기관장으로 일할 때 어느 분이 들려주던 조언이다. 그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라 흘려들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한 대가는 통렬했다. 임기를 마칠 무렵에는 그 의미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지금은 기관장으로 새로 취임하는 분을 만나면 꼭 들려주는 경구다. 
 
내자불선 선자불래(來者不善 善者不來). '찾아오는 자는 선하지 않고 선한 자는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청나라 시대의 문인인 조익(趙翼)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노자(老子)의 '선한 자는 말이 없고 말 많은 자는 선하지 않다'라는 '선자불변 변자불선'(善者不辨 辯者不善)을 변형해 인용한 문구다. 사람을 기용할 때 먼저 찾아오는 자를 경계하고 선한 자를 찾아 구하라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다. 대체로 먼저 찾아오는 자를 믿고 의지한다. 겉으로 봐서는 찾아온 자가 선한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불선한 자일수록 교활하게 선한 자로 위장해 접근하기 때문이다. 
 
기관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해온 사람은 그 기관에서 부서장으로 일하는 학교 후배로 학술 행사를 통해 알던 사이였다. 당연히 반갑게 전화를 받았고 자연스럽게 집 근처 호프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가볍게 맥주 한두 잔하며 축하 인사받는 사소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여파가 매우 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외부에서 부임해 누구도 잘 모르는 기관장을 가장 먼저 그것도 집 근처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조직 내에서 엄청난 화젯거리다. 그분의 집이 어디이고 어떤 맥주를 좋아하며 주량은 어느 정도이고 무슨 발언을 했느냐는 정보는 다른 직원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다. 
 
한번 찾아오면 그걸로 끝나지 않고 계속 찾아온다. 기관장으로서도 비공식적으로 내부 사정을 알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 자주 접촉한다. 이런 경위를 거치며 그 직원은 알게 모르게 '핵심실세'가 됐다. 그 정도가 되면 자랑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지역본부나 해외사무소에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새 기관장과의 친분 관계를 과시하며 떠들고 다녔다. 임원 인사가 있을 때는 후보자들을 만나 자신이 기관장을 잘 안다며 천거해 주겠다고 거들먹거렸다.  
 
이런 뒷이야기는 그 직원이 외부 청탁 사건에 연루돼 처벌 받기 전까지 몰랐다. 나중에 개인 비리로 수사를 받고 기소되는 과정에서 기관장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나눈 대화를 녹취한 행위도 밝혀졌다. 심지어 녹취 내용을 이용해 본인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하려고 시도한 것도 드러났다. 등골이 서늘한 일이었다. 자칫 함부로 말 잘못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를 뻔했다. 믿음을 저버리고 배신한 것에 실망도 컸다. 무엇보다 사람을 잘못 보고 가깝게 대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시간을 돌이켜 그 직원이 처음에 축하한다며 만나자고 하였을 때 거절할 수 있었을까? 수십년 동안 기관에서 근무하며 경험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도와주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 뿌리칠 수 있었을까? 순수하게 성공한 기관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정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불선의 포장이라고 의심할 수 있었을까?
 
만일 축하 전화를 형식적으로 받고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아마 동네방네 욕을 하며 다녔을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더니 건방져졌다고. 이런 소리를 듣는 다른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새로 온 기관장은 권위적이며 소통을 못 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찾아오는 불선한 자를 멀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선한 자는 교묘하게 연고나 인맥을 타고 들어온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두 다리 건너면 서로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중간에 친분 있는 사람을 통해 접근해 오면 냉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힘 있는 정치인이나 관료를 통해 소개받아 접근해 오면 막을 길이 없다.
 
불선한 자를 멀리하라는 것은 인간관계를 끊고 살라는 것과 같다. 우리라의 관계지향적 문화에서 '너 혼자 잘났느냐, 자리 떠나면 두고 보자'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가 아니면 감히 할 수가 없다. 
 
불선한 자는 권력자에게 파리처럼 꼬인다. 권력자와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권이 크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권력이 커질수록 불선한 자가 무리지어 몰려든다. 파리 떼처럼 꼬이는 불선한 자들에게 이용당해 권력과 명예를 잃고 패가망신한 권력자는 수도 없이 많다. 
 
최근에도 문빠, 드루킹, 개딸, 핵관, 팬클럽 등으로 이름을 달리하며 군대처럼 몰려다니는 불선자들이 많다. 주인공은 이들을 추종자로 광팬으로 또는 양념으로 여기며 인기를 누리고 즐기지만 곧이어 후회할 날이 머지않다. 불선을 품고 찾아오는 자를 가깝게 하면 반드시 이용당하고 배신당한다. 불선한 자에게 당해 낭패보지 않으려면 내자불선 선자불래라는 글귀를 가슴깊이 새기어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보라 기자
SNS 계정 : 메일 트윗터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