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군 당국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지난 5일 동해상으로 지대지 미사일 사격을 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뉴시스 사진)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의 핵위협이 노골화된 상황에서 여권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를 넘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독자 핵무장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현실성 측면에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 입장이 확고한 미국의 반대가 결정적이다. 동북아의 도미노 핵무장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의 영향력도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핵무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도 깰 각오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의 제1기조로 삼은 윤석열정부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는 차기 당권주자들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등과 관련해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 따른 것으로, 일부는 자체 핵개발과 핵무장이라는 강경한 자세까지 취했다. 현재 정부는 미국의 핵잠수함 또는 항공모함 전단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 여부 등을 놓고 미국을 설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건 김기현, 조경태 의원이다. 두 사람은 현 상황을 NPT 탈퇴 요건인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독자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핵무기는 대칭성을 가진 핵무기로만 막을 수 있다"며 핵무장론에 힘을 실었고, 조경태 의원도 '핵개발'을 주장하며 전술핵을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구에 배치하겠다고까지 했다. 유승민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전술핵 재배치보다 '나토식 핵공유', '한국식 핵공유' 필요성 등을 거론하며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당권주자는 아니지만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등 여권 내 지도자급 인사들도 당권주자들의 핵무장론에 힘을 싣고 있다.
한미 연합 해상훈련에 참가한 한미 해군 함정들이 지난달 29일 동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은 미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 항해 모습. (해군 제공, 뉴시스 사진)
이와 관련해 <뉴스토마토>는 18일 6인의 대북 전문가들에게 핵무장론 현실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김준형 한동대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이 의견을 줬다.(가나다 순)
이들은 현실적으로 한국의 핵무장은 어렵다는 의견을 전했다. 무엇보다 미국을 설득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은 "미국이 핵무장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면 일본과 대만도 핵무기를 가지려 할 것이다. (핵무장을 하려면)미국과의 동맹을 깰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대만에서도 중국의 핵무기에 맞서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면 일본과 대만, 필리핀 등에서도 이를 수용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자 미국에 '핵무기 공유'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은 폴란드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폴란드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국립외교원장 출신의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미국은)우리한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기자들이 한국에서 전술핵 배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자 (미국에서)한국에게 물어보라고 했다"며 "굉장히 강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외교적으로 설명하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말라는 얘기다. (미국의 핵무장 허용은)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동북아시아 동맹국들에게 핵무장을 허용할 경우, 자국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때문에 더더욱 핵무장을 용인해줄리 없다는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적어도 한반도에서 전술핵이든 아니면 자강력 차원에서 핵을 보유한다고 한다면 주변 국가인 일본이라든지 대만, 필리핀 등도 핵을 보유하려고 하지 않겠느냐"며 "미국이 그것을 용납하겠나. 현재 한국과 일본, 대만이 핵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 러시아의 반발도 잇따를 수 있다. 김준형 교수는 "중국은 (한반도에)사드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난리였는데, 우리가 전술핵 무기를 배치한다고 하면 야단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실제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개발한다면 주변국들이 우리에 대한 전략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며 "기존에 적절한 협력과 긴장이 있었다면 더더욱 공세적으로 한국을 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리스크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핵무장은)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9일까지 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 등의 군사훈련을 지도했다고 지난 11일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또 한국의 핵무장은 오히려 북한의 핵무력을 더욱 강화시켜줄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민 실장은 "북한에서는 한국의 전술핵 배치나 개발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명분을 갖고 자신의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핵무기 가속화 자체가 안보 딜레마 상황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술핵 재배치의 경우, 전략적으로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준형 교수는 "미국은 있는 전술핵도 제로(0)로 만들기 직전"이라며 "미국은 기본적으로 전술핵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을 정도다. 과거에 비해 전략핵이 속도가 빨라졌고, 정학성도 굉장히 향상됐기 때문에 전술핵을 사용할 필요가 적어졌다"고 설명했다.
설사 핵무장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미국에 부담할 운영 비용과 국제사회의 반대를 거스르고 핵무장을 추진한 데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기업의 수출·입 문제 등 경제적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는 "(핵은)미국 자산이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한국에)요구될 것"이라며 "1991년에 전술핵도 비용 요인 때문에 철수했다. 그때 1발당 100만불의 관리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계기가 됐다. 홍민 실장은 "(핵무장에 따른 국제사회의)제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될 수 있다"며 "경제적 비용이 상당한 만큼 (핵무장이)정말 억제 효과를 갖느냐. 그렇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핵무장 보다는 외교적 접근으로 남북 간 대치 국면을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전 장관은 "핵무기에 핵무기로 맞서면 통일 가능성은 없고 영구 분단론이다. 반통일론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며 "윤석열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화 테이블이 열려야 한다. (미국과)협상을 우선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민 실장은 "오히려 비핵화 원칙을 우리가 계속 지키고 전술핵 배치를 하지 않는 것이 북한에 대한 외교적, 평화적 해법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