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고은하 기자] 이태원 압사 사고로 영상을 시청한 국민이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참사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도 참사 영상이나 사진 등을 본 누구나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전문가들은 사고 영상의 반복적인 노출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며 되도록 영상 시청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태원 참사가 전 국민에게 '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한국 청장년의 트라우마 실태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신체적, 정서적으로 해롭거나 위협이 되는 단일 사건, 여러 사건, 혹은 일련의 상황으로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등 부정적 영향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라고 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 두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PTSD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질환'이며, 트라우마는 그 자체로서 질환이라고 볼 수 없고 PTSD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이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PTSD는 해당 사건을 경험한 후 침습적 증상, 회피 증상, 부정적인 인지·감정의 변화가 각각 한 가지 이상, 각성과 반응성의 뚜렷한 변화가 두 가지 이상 나타나고 이것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는 PTSD뿐 아니라 그 외 다양한 부정적 건강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전 국민의 심리적 트라우마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긴급 성명을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이런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수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어 우리가 모두 시민의식을 발휘해 추가적인 유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행동은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제하는 것을 권한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또 "이번 참사로 사망한 분들의 유가족과 지인, 부상당한 분들과 가족, 목격자, 사고대응 인력 등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큰 충격이 예상되며 대규모의 정신 건강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대유행을 비롯한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민간 전문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도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대응에 대해 "대규모의 사망과 부상이 발생한 재난 사고 피해자의 치료, 해당 지역의 안전 확보 등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중요한 것은 생존자와 유가족, 목격자, 그 외 관련된 많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마음의 고통,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학회는 "생존자는 참사 후 불안과 공포, 공황, 해리 증상 등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며 고통이 심하고 일상생활이 힘들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청할 것"을 요청했다.
학회는 또 "유가족은 원망과 분노 죄책감에 휩싸일 수 있는데 갑작스러운 사고와 죽음이 고인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가족, 친척, 친구와 함께 고통을 나눠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한국임상심리학회도 "사건 직후 일정 기간 심리적, 신체적 변화와 고통을 겪을 수 있다"며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 회복에는 공동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혐오 발언을 하는 건 2차 피해를 가져와 초기 안정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트라우마 회복을 어렵게 한다"고 밝혔다. 한국임상심리학회는 사건 당시의 동영상을 공유하는 것 역시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학회는 심리적 안정을 위한 지침에 대해 "스트레스 상태에선 근육이 긴장되고 호흡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호흡을 깊게 하거나 복식호흡을 하는 것은 긴장을 완화해 심신의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학회는 또 "충분한 휴식과 규칙적인 생활 유지,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주의 분산시키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도움이 되는 행동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진용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외협력 홍보이사는 "일단 트라우마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관련된 사람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도 "전반적으로는 시청하는 사람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 물품들이 남아 있다. (사진=뉴시스)
전진용 홍보이사(울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면 사고 영상에 노출될 시 재경험을 하게 된다"며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장면이 떠올라 놀라는 반응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전 이사는 "사고가 발생하면 뉴스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지만 최근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 관련 영상들이 공유된다"며 "최대한 사고 영상을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람이 트라우마를 겪을 때는 일상생활과 분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선 일상생활을 잘하도록 노력하고 트라우마를 악화할 수 있는 부분을 피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에 유튜브가 발달하면서 사고 영상이 걸러지지 않고 나오는 게 문제"라며 "영상에 노출될 시 제일 많이 걸리는 질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PTSD는 본인이 겪는 것 외에 간접 경험도 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사고 영상이 노출되는 건 자제가 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PTSD 초기엔 심리상담을 통해 극복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사고 영상을 안 보는 게 좋다"며 "평소 습관대로 핸드폰이나 TV를 통해 영상을 시청하더라도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이 발표한 재난 정신건강지원 정보콘텐츠 및 플랫폼 개발 연구에 따르면 △심호흡 △복식호흡 △착지법 △나비포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나비 포용법은 갑자기 긴장돼 가슴이 두근대거나, 괴로운 장면이 떠오를 때, 그것이 빨리 지나가게끔 자신의 목을 좌우로 두드려주고 '셀프 토닥토닥' 하면서 스스로 안심시켜주는 방법이다. 두 팔을 가슴 위에서 교차시킨 상태에서 양측 팔뚝에 양손을 두고 나비가 날갯짓하듯이 좌우를 번갈아 살짝살짝 10~15번 정도 두드리면 된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태원 사고 대응을 위해 보건복지부 내 이태원사고수습본부를 구성해 신속히 사고를 수습하고 부상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의료와 심리 지원, 장례 지원을 실시한다. 복지부는 서울시 분향소 2곳에 심리상담 부스를 설치하고 마음안심버스를 배치해 누구나 상담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찾아가는 심리지원도 실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