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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20)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하다
입력 : 2022-11-08 오후 6:28:55
쌀국수를 먹다가 참전용사 할머니를 만났다. 어떤 할머니가 가슴에 훈장을 달고 상장을 액자에 넣은 것을 꼭 껴안고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었다. 범상치 않아서 사연을 물어보았다. 전사로서 1973년 전투에서 공을 세운 공로로 상을 받고 집으로 돌아기는 중이란다. 할머니의 상장에 적힌 이름이 판 티 느엉, 그때의 부상으로 걸음이 불편하시다.
 
내 작은 아버지 두 분은 맹호부대로 이곳 쿠이년에 파견되었었다. 한 분은 장교, 한 분은 사병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운전사한테 내가 베트남을 종단하는 목적을 설명하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는 입가에 엷은 미소만 지으시면서 내 손에 다른 한쪽 손을 얹으신다.
 
한 소녀가 성장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어머니가 되었다가 그리고 자신의 늙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인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은 어느 나라 여성이나 비슷하다.
 
대부분 베트남 여성은 가냘프고 온화하고 복종적이다. 처음부터 전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가정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가정을 지키려면 나라를 잃으면 안 되겠기에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섰다. 오랜 전쟁을 통해서 여성들은 가정과 사회 전반을 스스로 지켜내야 했다. 베트남의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강인하다는 찬사에 일점 부끄러움도 없을 듯하다.
 
베트남 여성은 침략군을 쫓아내고 독립을 쟁취하는 모든 전쟁에 참여했다. 수많은 전쟁 사학자와 작가들이 어떻게 작은 나라가 세계의 강대국들을 차례로 이길 수 있었는지 분석했다. 거기엔 여성 유격대, 여성 자살 특공대, 여성 자치대, 여성 정보원의 무수한 무용담과 여성 영웅의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이들은 소총으로 헬기를 떨어뜨렸고, 때론 함정을 폭파하기도 했고, 없는 길을 만들어 다리도 놓았다.
 
전쟁을 겪은 역사를 가진 모든 나라에 영웅이 있지만 베트남에서만 특별히 인정하는 영웅이 있다. 어머니 영웅이다. 전쟁에서 자식 3명 이상을 잃은 어머니에게 영웅 칭호를 준다. 지난번 광남 성의 거대한 어머니 영웅 상을 방문했었다. 5만 명의 베트남 어머니 영웅들의 이름과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 영웅 상 가운데 불쑥 솟은 어머니 흉상은 30년 동안 아홉 명의 아들과 한 명의 사위, 두 명의 외손주를 모두 전쟁에서 잃은 응우엔 티 트 여사이다.
 
베트남에서 자식이 전쟁터에 나갈 때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지도 자식을 껴안지 않는다. 자식이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들, 사위 다 잃고 손주까지 전쟁터에 나갈 때 어머니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말없이 손만 흔든다. 입을 떼면 통곡이 쏟아져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베트남 여자들이 강인한 생활력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었을 뿐 아니라 나라를 지킨 역사는 오래된다. 천 년 중국 지배 역사 속에 1세기 경 후한의 지배하에 있던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쌍둥이 쯩짝과 쯩니 자매가 당시 세계 최강의 중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 베트남의 잔 다르크로 불리기도 하는 쯩 자매가 거사를 일으켰을 때 이들과 함께한 36명의 여성 장수들은 백발백중의 여성 궁수 부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순식간에 65개 현을 점령하여 독립을 선포한 후 언니 쯩짝은 베트남의 여왕으로 즉위한다. 후한은 당시 최고의 명장이던 복파장군 마원과 2만의 병력을 파견하여 빠르게 진압에 나선다.  
 
쯩 자매가 이끄는 베트남군은 한나라 군을 수개월에 걸쳐 괴롭히지만 결국 부하들의 이탈로 결국 패하여 처형당한 후 목은 낙양으로 보내진다. 당시 자매의 나이는 29세였다. 쯩 자매의 반란이 남긴 상처는 컸고 그들의 활약에 대한 기억은 강렬했다.
 
베트남에서 제일 이상하고 놀랍기까지 한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이고 심지어 건설현장의 막일도 여자가 하며 거리 미화원도 여자들이다. 반면 남자들은 카페에 모여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거나 당구를 치며 그저 노닥거리고, 흔들리는 해먹에 몸을 싣고 오수를 즐긴다. 시장에 가보아도 점포를 지키는 사람은 모두 여자이다.
 
전쟁이 일상인 삶을 살다보니 온 국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합쳤고 여자들도 총을 들고 전선에 나섰다. 그렇다 하여도 전쟁은 남자들의 몫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늘 전쟁을 치렀던 나라라 남자들은 언제 전쟁에 나가게 될지 몰라 보통 때 이렇게 쉬게 하였다. 그러던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설명을 한다.
 
베트남에서 여성의 역할은 크다. 인간 생활의 기본이 되는 농업을 주로 여성이 담당한다. 기후가 좋고 토양이 부드러워 여성이 농사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거기다 다산의 기원으로 생산의 기능이 있는 여성이 파종에서부터 수확, 판매까지 한다. 여성이 생산 활동을 담당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쟁이었다. 국가가 강력하지 못해 전쟁이 잦았다. 여자들의 삶보다 남자들의 삶이 더 고달프니 여자들이 전쟁이 없는 기간이라도 남자들을 쉬게 배려했으리라!
 
베트남의 황진이, 여류시인 호쑤언흐엉(胡春香)은 18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유교적 전통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 제약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빈정거린다. 꿋꿋하게 여성의 역할을 신장시키며 여성해방을 요구한 최초의 여성 지식인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오늘날 누구의 것보다도 창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여자의 운명

아! 여성들이여 아는가!
한편에서는 자식이 울고 한편에서는 남편이
아비와 자식이 배 위에 기어 다니고
어린애는 엉덩이 옆에서 앙앙 울어댄다.
서둘러도 밥하고 옷 짓는 일뿐이다.
남편과 자식에 대한 빚이 그러한 것을
여성들이여 아는가?
 
베트남의 고속성장의 배경에는 강인한 여성들이 있다. 전쟁이 끝나고 여성들은 생활 전선에서 독립적이고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 간다. 여성 경제활동 인구는 70%에 이른다. 그래서일까 베트남 여성들은 진흙 속에서 오욕을 견디며 피어나는 아름다운 연꽃 같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34일차인 지난 3일 베트남의 한 거리에서 만난 여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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