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치과 생긴다고 하니깐 얼마나 좋은 지 잠도 안 오더라고."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8일 문을 연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앞에서 만난 조분돌(80·여)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고맙다”, “복 많이 받아라”로 덕담을 건넸다.
조 할머니가 이렇게 기분 좋은 이유는 돈의동 쪽방촌에 처음으로 ‘무료 치과’가 문 열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생긴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에서 8일 조분돌 할머니가 치아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내 이 좀 봐라”며 대뜸 벌린 조 할머니의 입 안에는 수십 개는 있어야 할 치아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조 할머니는 당뇨 합병증으로 치아가 쉽게 부러지거나 빠진 상태로 비전문가가 봐도 치료가 시급했다. 조 할머니도 진작에 싸게 해준다는 소리를 듣고 구로에 있는 치과까지 찾아갔지만 충치는 무료로 해줘도 임플란트나 틀니 같이 큰 돈이 들어가는 치료는 자부담을 해야 했다.
조 할머니는 “치료비를 못해도 120만원 내라는데 한 달에 수급으로 55만원 받아서 방세 35만원 내고 당뇨약·혈압약 먹어야 하고 허리 아파 진통제 사고 무릎 아파 파스 사고 나면 모으려고 해봐도 안 되겠더라”고 하소연했다.
그렇게 몇 년을 조 할머니는 치과 진료를 포기한 채 부러져 나가는 이빨을 바라만 보며 지냈다. 음식을 먹어도 씹지 못해 소화가 안되니 소화제나 사이다로 해결해 보려다 속만 더 안 좋아지는 게 일상이었다.
원하고 원하던 치과 의자에 누운 조 할머니는 “치료비가 부담돼서 80살 먹고 이를 하면 뭐하겠나 싶어 포기했었다”며 “죽을 때까지 밥도 잘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너무 좋다. 나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생긴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앞에서 조분돌 할머니가 웃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돈의동 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쪽방촌 주민 500여명 가운데 70% 가량은 크고 작은 치과 관련 질환을 갖고 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부담되거나 건강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다. 실제로 작년 서울시가 실시한 쪽방주민 실태조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 1위로 치과 진료(32.6%)를 꼽았다.
서울시는 이날 돈의동 쪽방상담소 5층에 센터를 열었다. 센터에는 치과 진료의자 2대와 파노라마 X-ray 등 진료에 필요한 전문 장비가 갖춰져 있다.
서울시가 장소 제공 및 운영, 우리금융미래재단이 사업비 지원, 행동하는의사회에서 치과의사 등 진료인력을 맡았다.
치과 진료는 주 3회 이뤄지며, 내년 1월부터는 의료진이 직접 찾아가는 ‘방문 구강건강 관리서비스’도 시작할 계획이다.
이날 센터를 둘러본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촌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치아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불편을 겪는 분들이 참 많다”며 “앞으로 여기를 헤드쿼터로 해서 나머지 쪽방촌 네 군데를 순회하면서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손태승 우리금융미래재단 회장이 8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생긴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를 둘러보고 있다.(사진=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