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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상폐요건 완화가 투자자 보호책인가
입력 : 2022-12-23 오전 6:00:00
거래소의 상장폐지 요건 완화가 적용된 지난 12일 관리종목에서 해제된 기업들이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관리종목 지정 사유였던 영업손실을 해소했거나 회사의 재무가 개선된 것도 아닌데 단순히 관리종목에서 해제됐다는 이유로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거래소는 지난 12일부터 상장폐지 심사 관련 ‘상장규정’ 개정안을 적용했다. 재무적 수치뿐 아니라 종합적인 경영 상황을 살펴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투자자보호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제시해온 공약이며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대표적 요건 완화 중 하나는 코스닥 기업들의 영업손실 요건이 있다. 코스닥 기업들의 경우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할 경우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다. 그러나 개정된 상장규정에선 영업손실 규정이 삭제됐다.
 
거래소의 상폐 요건 완화에 일부투자자들은 환호했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좀비기업들이 시장에 잔류하면 시장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실제 관리종목 지정사유 해소로 상한가를 기록했던 상장사 상당수는 익일 주가가 급락했다. 기업가치와 무관한 단순 이벤트에 투기성 단타 수급이 쏠렸던 까닭이다.
 
관리종목 지정은 애초에 투자자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장치기도 하다. 기업의 재무가 부실한 한계기업과 계속기업 존속이 우려되는 기업들을 투자자들에게 미리 알려 신중한 투자를 돕기 위함이다. 더구나 관리종목에 지정되더라도 즉시 상장폐지 되는 것도 아니다.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고 정상화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부실기업들이 시장에 계속 잔류하면 투기세력 등의 주가 조작에 활용될 우려도 있다. 부실기업들이 주가조작에 활용된 사례는 적지 않다.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에 투기세력이 붙어 소액공모 등을 진행한 뒤 주가조작에 나선 사례는 금융감독원의 불공정거래 행위 조사 기록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거래소의 상폐 요건 완화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이나 주가조작 세력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전환사채(CB)를 활용해 한계기업의 무자본 M&A에 나서는 세력들에게 가장 큰 위험요소는 상폐 등 거래정지인데, 상폐 요건이 완화되면 이들의 위험성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거래소 입장에선 윤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공약해온 코스닥 상폐 완화를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상장폐지를 막는 것이 투자자 보호책이 될 순 없다.
 
국내증시는 그간 고질적인 저평가 문제로 ‘박스피’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학개미 운동 이후 박스피를 벗어나 3000을 넘어섰던 국내증시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시장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올바른 정책고민이 필요할 때다. 
 
박준형 증권부 기자 dodwo90@etomato.com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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